"集安의 태왕릉은 광개토대왕릉" 우석대 조법종 교수 주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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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지린(吉林)성 지안(集安)시 '태왕릉(太王陵)'의 주인이 고구려 광개토대왕일 가능성을 보여주는 유물이 국내 학자에 의해 확인됐다.

광개토대왕비와 인접한 이 능에서는 그간 '태왕릉'이라는 명문만 나왔을 뿐 무덤 주인이 누구인지 알려주는 확실한 표지는 발견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한.중.일 등의 역사학계에서는 '태왕'의 후보로 광개토대왕과 함께 고국양왕.고국원왕을 꼽는 등 논란이 있어 왔다.

우석대 조법종 교수는 13일 "지난해 말 중국 지안 박물관을 답사하던 중 태왕릉에서 출토된 청동방울에 '호태왕'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것을 확인했다"며 "이는 무덤의 주인이 호태왕이라는 묘호를 사용했던 광개토대왕이었음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지안 박물관은 고구려 유적지 정비과정에서 새롭게 발굴된 유물 등을 대폭 보강해 지난해 10월 재개관했으며, 조교수팀은 12월 말 현장을 답사했다. 현재 지안 박물관과 인근 고구려유적은 중국 당국에 의해 답사가 금지된 상태다.

◇청동방울에 '호태왕'명문=태왕릉에서 발굴된 청동방울은 높이 4.5~5㎝의 작은 종모양으로 사방에 '신묘년 호태왕 (무?)조령 구십육(辛卯年好太王(巫?)造鈴 九十六)'이라는 글자가 석 자씩 새겨져 있다. 호태왕은 광개토대왕의 묘호인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의 끝 세 글자다.

조교수는 "태왕으로 불리던 왕은 여럿일 수 있지만 호태왕은 광개토대왕을 지칭하는 것"이라면서 "무덤 주인을 두고 벌어진 그간의 논란은 이제 수그러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정확한 식별이 어려운 한 글자를 '무(巫)'로 볼 때 뜻을 '호태왕의 무당이 96번째로 만든 방울'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학계 파장=그간 태왕릉에서 나온 유물을 새롭게 해석해야 하는 등 고대사 학계에 미칠 영향도 만만치 않다. 조교수는 특히 방울에 기록된 '신묘년'(AD 391년)을 광개토대왕비의 기록과 연계, 이른바 '임나일본부설'을 반박할 수 있는 유력한 증거로 해석하고 있다.

임나일본부설은 광개토대왕비에 새겨진 '倭以辛卯年來渡海破百殘羅 而爲臣民', 즉 '왜가 신묘년부터 바다를 건너와 백제.신라를 정복하고 신민으로 삼았다'는 내용의 이른바 '신묘년조'를 주된 근거로 하고 있다. 국내 학계에서는 이를 고구려를 주어로 하고 '파(破)'까지 끊어 읽어, '고구려가 신묘년에 일본을 무찔렀다'고 해석해왔다.

조교수는 "서체 등으로 볼 때 청동방울은 광개토대왕 생존시에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크다"며 "이는 신묘년에 광개토대왕을 기념할 만한 특별한 업적이 있었다는 뜻이며, 임나일본부설을 부인하고 국내학계의 해석에 힘을 보태는 논거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명확한 표지석이 나오기 전까지는 논란이 계속될 수밖에 없으며, 호태왕으로 불렸던 왕이 광개토대왕뿐이었는지도 확인할 길이 없다"는 신중한 반응도 나오고 있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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