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명제 산파역 일문일답/김용진 재무부 세제실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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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철통보안­전격실시」 성공적”/두달 전부터 본격작업… 외국사례 집중검토
『무엇보다 완벽한 보안속에 실명제를 실시하게돼 기쁩니다. 만약 증권시장 등에 이 사실이 사전에 새나갔다면 혼란을 면치 못했을 것이지만 다행스럽게 끝까지 비밀이 유지됐습니다.』
실명제의 전격실시를 발표한뒤 13일 새벽 서울 여의도 자택에 돌아온 실명제의 주역 김용진 재무부 세제실장은 대사를 치른 탓인지 시종 상기된 얼굴로 실명제 전격실시의 배경을 묻는 기자에게 그동안의 어려웠던 준비과정을 털어놨다.
그는 『실명제의 전격실시는 김영삼대통령의 뜻이었으며 실명제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이뤄진 만큼 또 다시 공개논의를 하는 것은 국론분열과 국력소모를 가져오기 때문에 전격적으로 실시하게 됐다』고 말했다.
다음은 김 실장과의 일문일답 내용.
­보안에 어려움이 많았을텐데.
▲오래전에 홍재형 재무장관에게 사표를 제출하고 비밀이 새나가면 공직생활을 그만둔다는 각오로 일했다.
­어디에서,언제부터 준비작업을 해왔는가.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이경식부총리,홍 장관과 함께 비밀리에 추진해왔다. 청와대 경제팀도 몰랐을 것이다. 그러다가 과천청사 부근에 40평짜리 아파트와 강남에 사무실을 별도로 마련,10여명이 두달전부터 본격적인 작업을 해왔다. 참여한 사람은 재무부직원 몇명과 국세청 직원 2명,시중은행 차장 1명,한국개발연구원의 박사 1명 등이다. 직원들에 대해서는 사표를 받지 않았지만 보안이 유지안되면 모두 그만둔다는 각서를 받았다. 박원구차관도 12일 오후에야 통보받았다. 재무부내 동료들에게 말을 못해 죄송하기 짝이 없다.
­실시시기를 8월12일로 잡은 이유는.
▲한달반께 전부터 8월중순과 8월말을 놓고 논란이 있었다. 그러나 시기가 늦어지면 보안유지가 어렵고 해서 중순을 택했다. 중순중에서도 12일과 14일을 점찍었으나 토요일보다는 목요일이 여러가지로 일처리하기가 좋아 D데이를 목요일로 잡았다. 13일은 서양사람들이 싫어하는 「13일의 금요일」이어서 일찍부터 배제했다. 최종일의 선택은 위에서 했고 다만 마지막 준비를 위해 48시간전에만 알려달라고 했다.
­실명제를 전격 실시하게된 이유는.
▲5공초부터 실명제가 추진됐지만 정치적인 이유로 12년간 시행이 안됐다. 문민정부는 강력하다. 무엇보다 대통령의 의지가 강했다. 실명제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는 오래전부터 마련된 것 아닌가. 시기를 늦출수록 국론분열과 국력소모가 있었을 것이다. 실명제를 공론에 부쳤다면 시행이 어려웠을 것이다.
­갑작스런 실시에 어려움은 없었는가.
▲두달전부터 작업에 박차를 가했지만 이미 5공초부터 금융실명제 실시준비단이 발족돼 모든 준비를 해왔고 준비단이 해체되면서 89년 자료를 넘겨받아 대응하는데는 문제가 없었다. 최근에는 직원들을 외국에 보내 외국사례를 집중적으로 검토해왔다.
­실명제의 실시가 가뜩이나 부진한 경제에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겠는가.
▲단기적으로 혼란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이 제도를 시행하지 않고는 선진국이 되기는 불가능하다. 증시도 며칠은 주가가 빠지겠지만 10여일 지나면 다시 오를 것이다.
증시안정을 위해 주식양도차익에 대한 과세는 하지않기로 했다.<길진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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