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한 어버이상' 받은 아버지가 아들 인공호흡기 뗀 사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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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호 01면

아들의 인공호흡기를 뗀 윤설장씨가 아들의 유해를 뿌리기 전 슬픔을 억제하지 못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아들은 뒤에 보이는 화장실에서 쓰러졌었다. [담양=신인섭 기자]

집에서는 의외로 죽음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현관 입구에는 여느 집과 마찬가지로 가지런히 놓인 신발이 손님을 맞았다. 아들이 숨을 거둔 방의 침대도 말끔히 정리돼 있었다. 20년 이상 힘겹게 살아온 탓인지 집에는 흔한 가족사진 하나 눈에 띄지 않았다. 주인을 잃은 휠체어만 구석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희귀병 자식 둔 부모는 내 심정 알 것”

“호흡기를 떼는 순간 진짜 세상에 아무것도 안 보였어요.”

10일 아버지 윤설장(52·전남 담양군 창평면)씨가 큰아들 석천(27)씨와 작별하던 순간을 떠올릴 때, 그의 눈가에 투명 액체가 내비쳤다.

이틀 전인 8일 오전 11시, 아버지는 중대한 선택을 했다. 광주병원 병실에 누워 있는 아들의 입에서 인공호흡기를 뗀 것이다. 아들을 싣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13㎞.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고 했다. 심지어 자책감마저도…. 아버지는 집에 도착해 침대에 아들을 눕혔다. 몇 시간 후 아들은 아주 조용히 숨을 거뒀다. 아버지는 경찰에 이를 알렸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중학교까지만 나온 윤씨의 삶이 순탄했을 리 없었다. 돈을 모아 조그마한 건물을 샀을 때 득달같이 불행이 찾아왔다(윤씨는 현재 여기에서 나오는 월 100만원가량의 임대료로 생활한다). 1980년대 중반이었다. 큰아들이 점차 근육이 줄어들어 루게릭병처럼 온몸이 굳는 ‘근이영양증’에 걸린 것이다. 치료약도 없는 병이었다. 이후 아버지는 광주의 장애인학교(은혜학교)까지 매일 아들을 태워 등·하교시켰다. 둘째 아들(23)도 발병해 같은 학교로 보냈다. 10년 넘게 그렇게 살았다. 동네 장애인 학생 2명도 같이 통학시켰다. 둘째 졸업식 때 ‘장한 어버이상’을 받았다.

두 아들의 병은 점점 나빠졌다. 2004년 부인과 갈등을 빚으면서 헤어졌고 애들 수발을 도맡게 됐다. 80㎏이 넘는 애들을 업어서 화장실 변기에 앉히고 뒤처리를 했다. 아버지 자신도 올 2월 위암 진단을 받아 수술을 했다. 애들 때문에 20일 만에 퇴원해야 했다.

지난달 11일 여느 때처럼 큰아들을 변기에 앉혔다. 방에서 TV를 보고 있는데 30분이 지났을까. “쿵” 소리가 났다. 큰아들은 개구리처럼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병원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 뇌가 손상돼 식물인간 상태에 빠졌다는 진단을 받았다. 중환자실로 옮겼고 의사는 의식 회복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진단을 내렸다. 시간이 지나면서 엉덩이에 욕창이 생겼다. ‘20년 고생한 아들을 편하게 보내주자’고 마음을 먹고 병원 측에 치료 중단을 수차례 요구했다. 담당의사인 광주병원 내분비내과 김명수 원장은 안락사를 허용하지 않는 의료체계에서 말릴 수밖에 없었다.

김 원장은 아버지 윤씨와 싸워가며, 때론 그를 달래가며 환자를 붙들어뒀다. 마음은 편치 않았다. “안락사·존엄사를 어떻게 봐야 할지, 고민하며 괴로워했어요.” 하지만 현실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김 원장의 적극적인 만류에도 불구하고 윤씨는 입원 한 달 만에 극단적인 길을 택한 것이다. 자식을 스스로 숨지게 한 아비의 심정은 어떨까.

“경솔했어요. 식물인간(윤씨는 뇌사라고 표현)이라 편히 보내려 한 건데, 깨어날 가능성이 있었다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겁니다. 20년 넘게 근육병 자식을 키워본 사람은 내 심정을 알 것”이라며 윤씨는 고개를 숙였다.

전 부인인 고모(49)씨는 “더 살 수 있었다. 놔둬보자고 얘기했는데 일을 저지른 것”이라고 윤씨를 비난했다. 인근 이발소 주인의 말은 달랐다. “윤씨가 평소 얼마나 자식을 아꼈는데….” 경찰은 윤씨에게 살인죄를 적용하면서도 정상을 참작해 불구속 입건했다.

“전국에는 5000명가량의 근이영양증 환자가 윤씨 큰아들처럼 사투를 벌이고 있어요. 간호여건 등이 좋지 않아 대부분 20대를 넘기지 못합니다.”(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신현민 회장)

화장된 큰아들의 유골은 뿌릴 곳을 정하기 전, 한동안 집 안방에 단지에 담겨 보관돼 있었다. 바로 그 방에는 둘째 아들이 누워 있었다.

(희귀병 가족의 참담한 현실을 보여주기 위해 윤씨의 동의를 얻어 이름·얼굴을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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