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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극적 안락사’에 사법당국 시각 달라져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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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호 02면

경찰은 아들의 인공호흡기를 뗀 윤씨를 불구속 입건하고 담당의사를 무혐의 처리했다. 형법상 살인죄에 해당하지만 윤씨의 간병기간 등을 감안할 때 구속할 사안은 아니라고 본 것이다.

살인죄 적용했지만 윤씨 불구속, 의사는 무혐의

형법상 해석은 이렇더라도 의료계는 이번 사건을 안락사로 본다. 미국의 병리과 의사 잭 케보키언이 130여 명의 환자에게 독극물을 주입한 것처럼 적극적 안락사는 아니지만 치료를 중단함으로써 생명을 단축시켰다는 점에서 소극적 안락사로 해석한다. 또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 즉 존엄사와 구별한다.

국립암센터 윤영호 암관리 사업부장은 “식물인간은 의학적으로 사망한 것으로 보지 않는다. 생명을 유지하는 뇌기능이 살아있다. 윤씨의 아들은 치료를 했다면 식물인간으로 생명을 연장할 수 있었기 때문에 소극적 안락사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대병원 종양내과 허대석 교수는 “이번 환자는 회생 가능성이 없긴 했어도 인공호흡기를 달고 오랫동안 살 수 있을 것”이라면서 “수개월 내에 죽을 환자에 대한 무의미한 치료를 중단하는 존엄사로 보기 어렵다”고 해석했다.

안락사인데도 경찰이 윤씨를 불구속하고 의사를 무혐의 처리한 것은 이 문제를 보는 사법 당국의 시각 변화를 의미한다. 세부 내용엔 다소 차이가 있지만 1997년 보라매병원 사건이나 2003년 용산 사건에서는 가족을 살인죄로 구속했고 법원이 실형을 선고했다. 보라매병원 의사는 살인방조죄로 처벌받았다.

광주 북부경찰서 관계자는 “담당의사가 인공호흡기 제거를 계속 만류했고 그런데도 윤씨가 이를 거부했으며 이런 사실이 진료기록부에 상세히 기록돼 있어 의사가 할 만큼 한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윤씨의 불구속 입건과 관련, “오랫동안 아들을 보살펴왔고 같은 병을 앓고 있는 둘째 아들을 돌봐야 하는 점을 고려했다”고 말했다.

검찰은 지난달 말기 간경변 환자의 산소공급용 호스(삽관)를 제거한 서울대병원 의사와 이를 요구한 딸을 무혐의 처리했다. 서울대 허 교수는 “간경변 환자 사건은 전형적인 존엄사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변화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다가 이를 떼고 집에서 임종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데 현행 법률을 엄격히 들이대면 이 역시 살인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국립암센터 윤 부장은 “안락사는 시기상조라 하더라도 존엄사는 인정해야 하고 이를 위한 절차와 요건 등을 법률에 담아야 한다”고 말했다.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에는 뇌사의 요건과 절차를 정하고 있는데 이처럼 존엄사를 뒷받침하자는 것이다.

존엄사에 대한 환자의 의사가 중요한데 생전에 심폐소생술 중지 등을 미리 결정해 놓았고 이에 따라 연명치료를 중단하면 가족이나 의사의 책임을 묻지 않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번 사건에 환자의 의견은 반영되지 않았고 아버지 윤씨가 이를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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