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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TER] 통일 위해 준비해야 할 건 지갑 열 수 있는 아량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2호 02면

지난주 가장 큰 뉴스는 남북 정상회담 발표였습니다. 그런데 사안의 중대성에 비해 뉴스의 알맹이는 별로 없었습니다.

알맹이가 없었던 1차적인 원인은 정부의 부실한 브리핑입니다. 남북관계라는 특성상 모든 정보를 공개할 수 없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의제나 경과에 대한 발표는 너무 부실했습니다. 불과 보름 앞둔 정상회담의 의제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는 설명은 이해하기 힘듭니다. 회담이 성사되기까지의 경과도 너무 간략해 납득이 잘 안 됩니다.

사실 정상회담과 같은 초대형 뉴스는 당장 손에 잘 잡히지 않습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난 다음 진실이 드러나고 정확한 평가가 가능합니다. 2000년 정상회담 당시 대북 비밀송금처럼 정부가 숨길 경우 진상이 드러나기까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신중하게 보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중앙SUNDAY는 정상회담 관련 기사를 회담 당사자인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두 사람 얘기로 집중했습니다. 노 대통령의 의중을 읽는 기사를 4면 FOCUS로 다뤘습니다. 김정일 위원장에 대한 분석은 아예 별도 섹션(Special Report)으로 상세하게 다뤘습니다. 별도로 보관해 시사·논술 참고자료로 활용하실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알맹이가 없는 가운데 난무하는 정치인의 레토릭(rhetoric)은 일단 의심하고 들읍시다. 우리는 이미 레토릭이 그야말로 정치적 수사(修辭)에 그쳤던 예를 많이 보아왔습니다. 2000년 정상회담 직후 김대중 대통령이 ‘한반도에 전쟁 위협은 없다’고 한 얘기나, 김정일 위원장이 ‘한반도 비핵화가 김일성 수령의 유훈’이라고 했던 말들이 모두 허사(虛辭)였습니다. 독일인들은 통일 당시 헬무트 콜 총리가 ‘통일로 잃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한 얘기를 지금도 원망한다고 합니다. 말처럼 안 됐다고 실망하지도 맙시다.

대신 마음의 준비를 합시다. 이번 정상회담이 통일을 얼마나 앞당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정상회담이 성사된 배경인 한반도 주변 정세의 호전은 주목할 만합니다. 통일에 대한 준비를 서두르라고 촉구하고 있습니다. 통일을 준비하는 마음은 지갑을 열 수 있는 아량입니다. 서독이 통일 이후 15년간 동독 주민에게 지원한 돈이 약 1조4000억 유로라고 합니다. 동독 주민 1인당 1억3000만원 정도씩 받은 셈이죠.

독일 통일 직후 방한했던 헬무트 슈미트 전 총리의 말이 실감납니다. 인터뷰에서 “통일을 해야 할 한국인이 명심해야 할 조언”을 부탁하자 “통일은 비싸다. 돈을 많이 준비해 둬야 할 것”이라고 대답하더군요. 독일의 경우 서독 인구가 동독의 4배였습니다. 남한 인구는 북한의 2배입니다. 서독은 ‘유럽의 심장’으로 불리는 경제강국이었고, 동독은 사회주의권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였습니다. 우리의 경제력은 최근 세계 13위로 떨어졌습니다. 통일 이후 독일이 겪고 있는 사회문화적 이질감은 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그렇다고 통일을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통일은 장기적으로 한민족의 번영에 필요하다고 봅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치러야 할 비용을 감내할 마음의 준비를 하자는 것입니다. 물론 돈도 준비해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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