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초세 시비의 교훈(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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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세금문제 때문에 곤욕을 치른 정치지도자는 한둘이 아니다. 주민세를 신설했던 영국의 대처전 총리가 그러했고,소비세제 도입을 적극 주장했던 일본의 나카소네 전 총리도 홍역을 치렀다. 문제는 일단 의회를 통과한 새로운 세제도 세금을 걷는 과정에서 주민들의 불만이 쌓이고 통치자나 여당의 인기가 급속히 하락할 수 있다는 데 있다. 그래서 정부와 여당이 관련 세제를 시정하는 사태에까지 이른다. 세금은 이처럼 국민생활에 밀접하게 연관된 것이어서 입법과정에서부터 과세상의 문제를 좀더 치밀하게 심의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토지초과이득세도 한바탕 소동을 겪은 다음에 시행령을 고치기로 했다.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있었던 것과 똑같은 시행착오를 겪은 것이다. 민자당과 정부는 투기 목적이 없는 농민과 서민들을 우선 구제한다는 원칙아래 과세 내용이나 유휴지 여부를 판정하는 기준을 대폭 완화키로 했다. 과세대상 예정통지자 24만명 가운데 25%인 6만명 정도가 세금을 아예 내지 않거나,또는 덜 내는 혜택을 받도록 한다는 것은 관련 세제를 엄정히 집행하기에는 적지않은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그동안 민원의 대상이 대부분 공시지가 산정의 잘못에 몰려있었고,그 다음이 농촌지역 현지 주민들이 가지고 있는 농지나 목장용지가 어째서 투기냐는 것이었다. 토초세에 대한 저항은 이미 입법과정에서부터 논란이 되었던 미실현이득에 대한 과세라는데 기인한다. 징세당국까지도 오래전부터 그 점을 우려했다. 고질적인 부동산투기를 막아야 한다는 여론과 세제를 통해 이를 근본적으로 뿌리뽑기 위해서는 토지공개념의 확대도입이라는 제도적 접근이 불가피하다는 사정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세제만을 생각했고,세정이나 징수행정에서 빚어질 국민과의 마찰을 깊이 고려하지 않았다.
하나의 세제가 자리잡기 위해서는 일정기간의 냉정한 분석이 따랐어야 한다. 공시지가 산정이 주목구구라는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나돌지 않았는가. 더욱이 이 제도는 지금처럼 땅값이 떨어질 때를 고려하지 못했다. 부동산 가격이 하락할줄 알았다면 누가 입법했겠느냐고 대답한다면 그것은 매우 무책임한 말이다.
이제부터의 문제는 당국의 완화조치가 부동산투기의 빌미나 허점을 제공하는 것으로 비쳐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토초세 제정 취지는 투기 방지다. 현재의 세제에 그토록 많은 대민마찰의 소지가 있다면 당초 정부와 징세당국이 검토했던 종합토지 세제로의 흡수와 그 강화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번 토초세 과세조치의 완화는 정부의 과세권과 징세권에 상처를 주었다. 입법과정에서부터 이의를 제기했던 관계부처가 다시 이 제도로 흠을 입게 된 것은 정치권이 세제에 대한 연구없이 지나치게 선거구민만을 의식하거나 여론만을 좇기 때문은 아니었나 깊이 반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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