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BOOK책갈피] 폭력의 밑바탕엔 항상 공포가 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3면


사카이 다카시 지음, 김은주 옮김
산눈, 248쪽, 1만2000원

  프랑스 철학자 메를로 퐁티는 “육체를 부여받은 존재인 우리에게 폭력은 숙명”이라고 말했다. 숙명. 그래서인지 폭력은 참 다양한 형태로 우리 옆에 있다. 전쟁과 테러, 조직폭력배들의 패싸움, 집단 따돌림, 그리고 자살과 사형….

이 책은 이런 다양한 양상의 폭력을 철학적 관점에서 분석한다. 일본의 소장파 사회학자인 저자는 “‘폭력은 안 된다’는 구호가 옳은가”를 화두로 던지며, 폭력의 속성을 파헤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는 무책임하고 공허한 주장이다. ‘폭력은 안 된다→그러니까 폭력을 증오한다→폭력을 행사하는 자를 증오한다→폭력을 행사하는 자에게 폭력을’이란 역설을 잉태하고 있어서다.

역사적으로 폭력이 정치적 의미를 띤 경우가 많았다. 민족분쟁이나 종교전쟁이 그랬다. 하지만 최근의 폭력 양상은 점차 정치성이 없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예를 들어 1970년 대까지만 해도 브라질에서 유괴는 정치적인 목표에 의해 이뤄지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은 돈이 목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 정치성을 초월한, ‘의미 과다’의 폭력도 늘었다. 이슬람 원리주의에 의한 테러리즘이 그 예다.

저자는 폭력의 밑바탕에 ‘공포’가 있다고 분석한다. 92년 LA폭동의 도화선이 됐던 ‘로드니 킹 사건’을 보자. 25세 흑인 청년 로드니 킹이 LA 근교를 드라이브하던 중 경찰의 검문을 받고 무지막지한 폭행을 당했다. 킹은 바닥에 널브러진 채 경찰에 둘러싸여 주먹과 발, 경찰봉으로 맞았고 두 차례의 전기충격 공격까지 받았다. 볼과 발목뼈가 으스러지고 두개골이 아홉 군데나 골절되는 중상을 입었다. 그런데 이 폭행에 가담한 네 명의 경찰이 무죄로 풀려났다. (판결이 난 날이 바로 LA폭동이 일어난 날이다.) 어째서 ‘무죄’인가.

“로드니 킹을 공격하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벌떡 일어나 경찰에게 달려들어 폭력을 행사할 무시무시한 육체를 지닌 것으로 보인다”는 경찰 측 변호인단의 주장이 먹혀들어 간 것이다.

저자는 이를 ‘전도(inversion)’현상으로 해석했다. ‘강자’에 속하는 측이 ‘약자’에 속하는 쪽을 두려워하고 공포를 느끼는 현상이다. 우리 주변에선 ‘노숙자에게 공포를 느끼는 일반 시민의 심리’가 그 예가 된다. 이런 ‘전도’는 사람들을 쉽게 폭력적으로 만드는 장치다. 국가에 의한 폭력이 ‘예방을 위한 대항폭력’으로 정당화되고, 침략적 성격의 전쟁이 ‘자위’를 구실로 이뤄지는 과정에서도 전도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테러에 대한 언급도 흥미롭다. 저자는 테러리즘의 특징으로 ‘쇼’라는 점을 들었다. 국지적인 피해로 한정된 공격이 미디어를 통해 증폭돼 세계를 뒤흔드는 효과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쇼’라는 측면에서 테러리즘과 비폭력 행동-간디의 소금행진 같은-은 통한다. 저자는 어느 특정한 폭력을 비난하거나 옹호하지는 않는다. 다만, ‘폭력임에도 불구하고’ 옹호 받아야 하는 폭력으로 ‘적대성을 갖되 주권의 쟁취를 목표로 하지 않는 폭력’을 들고 있다. 저자가 말하는 ‘적대성’이란 옳지 않은 제도나 폭력에 대한 정당한 분노를 의미하며, ‘주권’은 폭력 수단을 독점하고 그 폭력을 누구에게 어떻게 행사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권리를 갖는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 폭력의 예는 뭘까. 우리 역사상 80년 광주항쟁이 아닐지. 쉽지 않은 결론이다.

이지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