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해체 관치금융폐해의 표본/양재찬 경제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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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5공정부의 국제그룹 해체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오랫동안 고쳐지지 않고 내려오는 이른바 관치금융의 폐해를 확실하게 보여준 산 교훈이다. 헌법재판소의 결정문은 이를 조목조목 따져묻고 있다.
국제그룹과 제일은행은 85년 2월5일 국제그룹의 자구노력에 관해 합의했다. 재무부는 이틀 후인 7일 「국제계열 현황과 대책」이란 특별보고서를 만들어 대통령의 구두결재를 받았다. 재무부장관은 이어 주거래은행과 상의없이 국제그룹 계열사의 인수자를 정했다.
재무부는 은행측에 국제그룹 해체방침을 알려주지 않았다. 은행직원들은 정부방침이 국제측의 자구노력을 통한 해결쪽으로 생각하고 국제그룹으로 하여금 은행에 주식을 보관시키도록 하는 등 일을 진행시켰다. 그러나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85년 2월21일 당시 이필선 제일은행장은 재무부가 준비해준 발표문을 그대로 읽었다. 그리고는 불과 4일후인 25일 중임임기를 1년6개월 앞두고 갑자가 은행장직에서 물러났다. 기업에 자금을 빌려준 은행이 부실에 빠진 그 기업으로부터 자금을 회수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 방법으로 파산절차를 밟거나 은행직원이 나가 기업을 관리해주거나 법정관리를 받게 하거나 부도처리한 뒤 담보건물을 팔아치우는 등 해당 기업이 처한 실정에 맞춰 할 수 있는 길이 얼마든지 있다.
그런데 재무부와 은행측은 법률이나 다른 어떤 규정에도 없는 「전먼해체­제3자 인수」라는 초법적 조치를 취한 것이다. 위헌결정이 났는데도 재무부나 은행측의 반응는 나몰라라다. 재무부는 현 단계에서 뭐라고 말할 수 없다는 입장이며,은행측은 회사를 살리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로 외부의 압력은 없었다고 해명했다.
이같은 당국과 은행측의 해명이 사실이라면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잘못이란 이야기가 된다. 그러나 88,89년 국정감사 직후 대검이 5공비리 척결차원에서 국제그룹 해체과정을 수사하자 재무부와 제일은행은 서로 자신들의 책임이 아니라는 주장과 함께 자신들에게 이로운 서류를 제출했었다.
금융계는 이번 사태로 인해 이제 정말 당국이 시중은행의 인사나 경영에 간여하기 어려운 상황이 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말 그대로 금융자율화를 앞당기는 한 중요한 계기가 되리란 「희망」인데 참으로 비싼 수업료를 치르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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