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비투자 왜 안 살아나나(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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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금 우리경제가 당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는 기업설비투자의 부진이다. 투자냉각을 그대로 두고는 경제활성화는 빈말에 불과하다. 더구나 현재의 투자부진은 미래의 생산활동 위축을 낳는다는 점에서 본질적인 심각성을 지닌다.
한달전의 상반기 마감을 전후하여 정부와 한은,그리고 여러 연구기관들은 기업 설비투자가 하반기에는 되살아날 것이라는 희망적인 예측들을 내놓았다. 예컨대 한은은 상반기에 7%나 줄어든 설비투자가 하반기에는 같은 폭의 증가추세로 돌아선다고 내다보았다. 숫자상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예측치들은 상반기의 실적과 현저히 다른 하반기의 설비투자 회복을 예고했었다.
이런 예측들이 현실로 나타나려면 하반기의 첫달인 7월에는 적어도 기업들의 꽁꽁 얼어붙은 투자심리에서 희미한 해빙의 징조나마 읽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사정은 정반대다. 투자결정 동기의 핵심을 이루는 기업들의 경기전망이 호전되고 있다는 징후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는 경제구조상 투자의 큰 몫을 담당하는 대기업집단은 투자와는 거리가 멀면서도 투자보다 훨씬 다급한 일들로 영일이 없다.
정부의 경제력집중 완화시책에 발맞춰 계열회사들을 대폭 정리하면서 한편으로는 상공자원부의 주력업종 제도가 어떤 모습으로 구체화될 것인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기업활동을 저해하는 사정은 없을 것이라는 정부측의 거듭된 다짐에도 불구하고 사회 각분야의 비리를 파헤치는 감사와 수사의 불똥이 언제 기업쪽으로 날아들지 모른다는 업계의 불안감은 지워지지 않은 상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7월에 발표된 기업관련 여론조사 결과들도 투자회복 전망을 어둡게 한다. 산업연구원의 조사에서는 조사대상 기업의 거의 절반이 투자를 축소하거나 주저하는 것으로 밝혀졌고,경총의 인력채용계획 조사에서는 절대 다수의 기업이 신규채용 규모를 줄일 계획인 것으로 드러났다. 흐림을 예고하는 업계의 투자분위기에 유일한 예외가 있다면 전경련회장단 모임에서 투자확대의 다짐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엄밀히 따져보면 이 역시 투자냉각의 심각성을 말해주는 역설적 증거에 지나지 않는다.
상반기를 넘기면서 정부는 신경제 1백일계획 기간중의 투자촉진시책 효과가 하반기에 가시화 된다는 판단을 내린 후 아직까지 이렇다할 새 진단이나 처방을 내놓지 않고 있다. 물론 정부가 아직까지도 그같은 낙관론에 머물러 있지는 않을 것이다. 투자촉진책의 효과를 상쇄하고도 남을 투자저해 요인들은 그동안 끊임없이 지적돼 왔고,그 중 상당부분이 정부의 정책혼선에 기인했음을 정부 스스로도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최소한 경기순환에 따른 자생적 투자회복 기운만이라도 살리기 위해 이를 억누르는 여러 요인들,특히 정부활동이 자아내는 요인들을 다시 한번 넓고 깊게 따져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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