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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쩍는 정치인들 TV출연/있는 그대로 보여주며 자기PR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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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토크쇼 단골손님… CF도 출연/신변얘기 초점… “말재주 경쟁”시각도
흔히 근엄한 표정을 잘짓는 국회의원들이 TV에 나와 대중가요를 부르거나 비정치적 토크쇼에 출연해 기량을 발휘하는 경우가 부쩍 잦아졌다.
대부분 딱딱한 시사토론·대담에나 출연했던 정치인들이 오락성 프로까지 마다하지 않게된 것은 작년의 대통령선거가 결정적 계기가 됐다.
당시 후보들은 TV가 대중에 미치는 폭발적 영향력을 고려,TV CF에 사활을 걸다시피했다. 김대중씨는 아예 강남주부들을 대상으로 한 「TV토크쇼」를 제작해 비디오를 돌리기도 했다.
최근들어 정치인들이 자주 나가는 프로는 KBS2의 조용남쇼와 SBS의 주병진쇼. 박찬종 신정당 대표처럼 아예 TV 우유광고에 돈을 받고 등장한 경우도 있다.
주병진쇼와 조영남쇼에 지금까지 등장한 의원은 20여명선. 복잡한 정치얘기보다는 「신변이야기」와 재미있는 장면연출에 초점이 맞춰졌다.
42세 총각 이석현의원(민주)은 「1백1번째 프러포즈」란 주제로 스튜디오에서 세차례의 즉석맞선을 봤다.
「김포마당발」 김두섭의원(민자)은 오랜 실업자 생활로 일가견을 갖게된 수제비만들기를 선보였다.
홍사덕의원(민주)은 맥주광고에 출연,『맥주거품같은 인기에 연연해하지 않는 정치인이 되겠다』는 뼈있는 대사를 던졌고,머리가 다소 벗겨진 이부영의원은 사회자의 요구대로 파마가발을 써보기도 했다.
정치자금 조달을 위해 설렁탕집을 운영하고 있는 이해찬의원에겐 설렁탕 세그릇을 놓고 진국을 알아 맞혀보라는 요구가 있었다. 이 의원은 녹화를 기다리느라 모두 식어버린 설렁탕중 진국을 가려내지 못했다.
패션디자이너인 부인 이신우씨와 함께 출연한 박주천의원(민자)은 부인이 디자인한 옷을 입은 패션모델을 골라내라는 주문을 받았고,조순형의원(민주)은 구두가게를 경영하는 부인 김금지씨(연극배우)와 함께 나와 부인을 손님으로 해 구두를 팔아보라는 짖궂은 연기를 강요당했다.
출연한 정치인중 제작진이 후한 점수를 준 의원은 이명박·박희태의원(민자)과 이해찬·이철의원(민주) 등이다.
이명박의원은 「옐친·고르비를 만나 시베리아 송유관을 국내에 끌어들이는 교섭」역을 해보라는 질문을 받고 예전의 「장사꾼끼」를 발휘해 재미있게 말잘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대선당시 민자당 대변인으로 특유의 말솜씨를 과시했던 박희태의원은 주병진씨가 말문을 닫게하는 입심을 보였다.
문성근씨가 진행하는 『그것이 알고싶다』의 진행자로 출연한 이해찬의원은 「발라보슈」 화장품가격의 폭리를 고발하는 장면에서 특유의 「송곳추궁」을 해 들어갔다. 제작진들은 문익환목사의 아들인 문성근씨와 절친한 사이인 이 의원의 이미지가 문씨와 비슷한데다 연기도 그럴듯해 추적프로에 탐(?)을 내고 있다.
이철의원은 과거 민청학련사건과 관련,사형선고를 받는 재판과정을 공연하며 『수줍어하면서도 진실이 배어있다』는 제작진의 평을 들었다.
조영남쇼에서 라면가게를 하며 금배지를 따낸 「역경」을 소개한 신순범 민주당 최고위원은 방송후 모국민학교 교장을 비롯,여러시청자로부터 『녹화테이프를 좀 구할 수 없느냐』는 연락을 받았다. 『쉽게 포기하는 요즘 애들에게 한번 보여주고 싶다』는게 주문의 요지였다. 정치자금 모금광고를 냈던 박범진의원(민자)은 주병진쇼에서 후원자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볼수있는 돋보기와 장미꽃을 주는 장면을 연출했다. 그덕 때문인지 박 의원은 최근 목표액 1억원을 달성했다.
그러나 정치인의 TV 출연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방송이 나가면 으레 『그 사람은 알고보면 사기꾼』이라거나 『왜 하필 그런 의원을 출연시켰느냐』는 항의전화가 반드시 걸려온다는 것이다. 반대편이 항상 있는 정치인 세계의 속성을 반영한 것이다.
또 출연자가 교섭받는다고 다 나오는 것은 아니다. 일부 고위 정치인은 『안나간다는데 왜 자꾸 귀찮게 하느냐』고 짜증을 내기도 하고 회사 고위층을 통해 압력을 행사하기도 한다고 한다. 여당의원들은 대체로 「위」의 눈치를 보는 경향인 반면 야당은 대부분 흔쾌히 수락한다고 제작진들은 밝히고 있다.
정치인의 TV등장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장동욱 주병진쇼 수석 PD는 『어차피 정치인은 자기의 모든 것을 나타내야 하는데 정치인의 다른 일면을 보고싶은 국민들의 욕구충족을 위해 출연은 필요하다』고 했다. 반면 김현숙 조영남쇼 책임 PD는 『여야 불균형의 문제를 포함,뚜렷한 동기없는 정치인의 집중 출연에 개인적으로 반대한다』고 했다.
박범진의원은 『정치인과 국민이 가까워질수 있는 계기가 된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한 반면 허경만 국회 부의장은 『그렇지 않아도 정치가 불신을 당하고 있는데 정치인을 너무 격하시키는 것 같다』고 했다. 홍사덕의원은 『대중과 접점을 늘린다는 점은 바람직하나 화제의 폭과 방향에 적잖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대 강현두교수는 (신문학)는 『정치인을 국민에게 정확히 알려줄 수 있는 폭넓은 경험을 가진 앵커가 양성돼야 현재와 같은 우스갯소리 위주의 진행이 되지않을 것』이라고 말했다.<최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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