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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 분단의 벽 넘어 금강산 빙벽 오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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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얼어붙은 구룡폭포를 오르면서 내내 가슴 벅찬 그 무엇을 느꼈습니다. 분단 이후 국내 산악인들의 첫 북한 땅 산악활동이었고, 또 최초의 겨울철 금강산 빙벽 등반이어서 그랬을까요."

서울 산악조난구조대의 김남일(金南一.40)대장과 대원 14명으로 구성된 금강산 겨울등반대는 지난 3일 오전 11시30분 금강산 구룡폭포와 비봉의 빙벽 등반에 성공했다. 금강산 벽(壁) 등반은 1941년 가을, 당대 최고의 클라이머였던 백령회(한국산악회 전신)의 김정태(작고)씨가 한국인 최초로 금강산 집선봉(1천3백51m) 중앙벽을 오른 지 62년여 만의 일이다.

金대장은 "올 겨울 이상난동 때문인지 구룡폭포나 비봉의 빙질(氷質)이 생각했던 것 만큼 좋지 않아 등반하기에 약간 어려움이 있었다"며 "그러나 기술적 난이도는 춘천의 구곡폭포 수준으로 중급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빙벽의 높이는 구룡폭포가 80m, 비봉이 1백50m 정도. 등반대는 두개 팀으로 나뉘어 이틀에 걸쳐 전 대원이 두 곳을 모두 올랐다. 등반대는 4일 구룡폭포에서 두번째 빙벽 등반을 시작할 때 빙폭 하단부의 얼음 10여m가 떨어져 나가는 바람에 대원 한명이 미끄러져 물 속에 처박히는 등 위험한 상황을 맞기도 했다.

金대장은 "당시 얼음기둥 안쪽으로는 물이 계속 떨어지는 등 빙질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이틀에 걸쳐 많은 대원이 등반하다 보니 얼음기둥이 하중을 못견디고 무너져 내렸다"며 "만약 선등자가 오르기 시작할 때 그랬다면 확보줄도 없어 큰 사고로 이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등반대와 닷새 동안 동행했던 북측 안내원은 빙벽 등반 장비가 신기한 듯 이것저것 들춰보더니 "왜 이런 일을 하느냐. 정부에서 돈은 주느냐"고 묻더라고 한다. 金대장이 "등반은 우리의 취미활동이며, 등반이 가져다주는 성취감은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더니 안내원은 "그러냐, 그렇게 즐겁냐"고 반문했다고 한다. 그래서 다시 "우리는 선배들의 염원을 풀기 위해 수십년을 별러 이곳에 왔는데 어찌 즐겁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말해줬다고 金대장은 전했다.

현대 아산과 서울 산악조난구조대가 공동으로 추진한 이번 금강산 겨울 등반은 현대아산 측이 3년 전부터 북측에 계속 제안했던 사업이다. 북측은 안전사고가 발생할 경우 환자 후송이 어렵다는 문제점 등을 들어 그동안 난색을 표명해왔으나 육로 관광이 시작되면서 그 같은 문제가 해결되자 지난해 연말 극적으로 성사됐다.

등반대는 빙벽 등반 전날 지난해 여름 현대 아산 측이 새로 개발한 7시간 코스의 세존봉(1천1백60m)에 올랐다. 세존봉에 올라 비로봉(1천6백38m)과 집선봉의 웅장한 모습을 바라보노라니 기회닿는 대로 집선봉 릿지등반도 시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金대장은 말했다.

金대장은 '등산이란 어려운 산을 기어오르려는 단순한 야심과는 다른, 그 어떤 정신의 발로다. 나는 가장 아름다운 정열을 산에 바쳤고 이 세상에서 받지 못한 보수를 산에서 받았다'라는 산악인 기도 레이의 말을 인용한 뒤 "우리 젊은 산악인 15명의 이번 금강산 산행이 북녘 산하에서의 본격적인 산악 활동의 밑거름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글=김세준,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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