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울림소극장-『불의 가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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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권력·성적 욕망·지식을 삼각구도로 배치하고 이를 상징과 은유로 묘사한 이윤택씨의 창작극 『불의 가면-권력의 형식』이 산울림소극장에서 공연중이다. 독재철학과 이성과의 대결구조가 이씨가 그린 주제다.
성적 욕망과 폭압은 여기서 권력과 지식간의 갈등을 증폭시키는 지렛대로 묘사되고 있다.
무대는 가상의 외딴 섬나라. 섬의 이름은 인체의 췌장 속에서 인슐린장애를 일으키는 랑겔한스섬으로 혼돈의 상황을 암시하고있다. 아편중독자인 부왕을 독살하고 왕위에 오른 독재자는 불로 상징되는 종교적 제의를 통해 권력의 무한정한 폭력을 행사한다. 나약한 지식을 대변하는 시의는 왕과 자신의 아내와의 황폐한 정사, 섬사람들의 인신 희생 등을 지켜보면서 마침내 권력에의 저항을 시도해 성병을 통해 왕을 제거한다.
욕망과 희생이란 양면성을 지닌 시의의 아내는 왕을 살해한남편의 권력장악을 거절함으로써 지식이나 권력에 종속되지 않는 성의 본능을 다시 한번 일깨우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이 작품은 잔혹극 연출로 이름난 채윤일씨가 연출을 맡아 권력의 음산하고 황폐한 모습을 퇴폐적인 분위기와 결합시켜 상징으로 가득 찬 무대를 꾸며내고 있다.
김학철·김종철·이미정·김동수·채승희씨 등이 전라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며 열연하고 있다. <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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