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되는 노사분규의 정치화(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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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현대그룹 계열사들의 분규가 연대화하면서 확산되는 기미를 보이고 있다. 김영삼대통령도 사태의 중대성을 의식하고 노사 양측의 탈법행위에 대해 대처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정부는 현대그룹사의 노사분규와 관련해 당장은 즉각적인 공권력개입 보다는 노사 양측의 대화를 요청하는 이전과 다른 신중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김 대통령이 이번 분규의 발생 배경을 언급하면서 사용자의 성의가 부족했다고 표현한 부분이나 경제장관회의가 개입에 앞서 제3자개입의 물증을 확보하려는 것 등은 새로운 자세임에 틀림없다.
다시 말해 이전과 같은 분규행위가 1차적으로 기업 수지를 악화시키고 국민경제,특히 수출에 지장을 준다며 요란하게 작업 차질로 인한 분규 피해액을 발표하던 자세와는 사믓 다르다.
돌이켜 보면 이번 노사분규가 현대그룹사에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이 정주영회장의 피소사건과 전혀 무관하지 않게 비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두 사건이 직접적인 관련은 없을 것이나 노조측이 정 회장을 정점으로 경영층의 관리능력에 허점을 보았을 가능성은 농후하다.
이같은 사용자측의 미숙한 대응자세는 현대정공의 경우 여실히 드러났다. 노조대표 직원 협약의 법률적 해석은 차치하고 전후경위가 석연치 않아 노조측에 분규의 빌미를 주었다. 사용자가 간과한 것은 이같은 행위가 노조측에 대해 선의의 협상파트너로서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인상을 주었다는 점이다. 이 점이 아마 김 대통령이 지적한 부분과 연관이 있다고 판단된다.
동시에 정부가 진자치게 현실보다 앞장서서 정책변화를 선도하는데서 오는 혼란이라는 점도 지적되어야할 부분이다.
노사 양측에 대해 정부가 중립적인 자세를 견지하여 편파적인 자세에서 벗어나겠다는 정책이 이번 사태와 무관하지 않다. 이같은 정책변화는 그것만 가지고는 무리가 뒤따르고,제반 경제질서의 개혁과 동시에 추구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노동자도 기본권을 존중받아야 하지만 동시에 기업경영의 결과에도 책임져야 하는 것이다. 너무 한 측면의 균형을 강조하다보니 또다른 방향에서 노사관계의 불균형이라는 예기치않은 부작용이 생긴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루 속히 노사관계의 새로운 틀을 만들어야 한다. 즉 장관이나 특정인의 견해에 좌우되지 않고 제도로 움직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제까지 명료하지 못했던 부분을 분명히 제도로 정착시켜야 진정한 개혁 의미가 있는 것이다.
노조측의 요구사항이 무리가 많다는 것도 지적되어야 한다. 정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다시 한번 현실적으로 조정하는 지혜를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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