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촬영(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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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미스터리 스릴러물로 세계영화사의 한페이지를 화려하게 장식한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은 특히 하나 하나의 화면구성에 남다른 정성을 기울였다. 그는 감독 데뷔 초창기부터 각 화면의 구도와 앵글에 세심한 관심을 가지고 일일이 프레임을 손수 그려 촬영기사로 하여금 그 스케치에 의해 촬영하도록 했다.
그 다음에는 촬영기사에게 아무런 간섭도 하지 않았는데 그 까닭은 촬영기사가 자신의 의도를 정확하게 따라줄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었다.
히치콕은 특별한 경우에 속하고 대부분의 영화감독들은 화면의 구도와 앵글을 주로 촬영기사에 일임한다. 똑같은 내용이라도 화면의 구도와 앵글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영화예술적 효과가 천양지차로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한편의 영화를 만드는데 있어 촬영기사의 중요성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그래서 촬영기사에게는 예술가적 장인기질이 필요하고 그것을 뒷받침해 줄만한 고집도 필요하다고 흔히들 말한다. 촬영기사와 제작사,촬영기사와 감독간에 마찰이 자주 빚어지는 까닭도 거기에 있다. 촬영기사가 좋은 화면을 만들기 위해 필름을 마음껏 쓰기를 바라는 반면 제작사는 경비를 줄이기 위해 가급적 필름을 아끼려하고,화면의 구도와 앵글에 있어서 감독과 촬영기사간에 견해차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제작자와 감독의 영화경험이 촬영기사에 비해 일천한 경우에는 영화의 성패가 촬영기사의 손끝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태프 캐스트가 모두 모인 시사회에서 관객들이 『감독의 시각적 기법이 매우 훌륭하다』고 칭찬하면 한쪽 구석에 앉아있던 촬영기사는 냉소적으로 웃거나 회심의 미소를 띠는 것도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그래서 베테랑급의 몇몇 촬영기사들은 「촬영감독」으로 불린다. 하나하나의 화면을 멋지게 만들려는 촬영기사들의 열정은 보통사람들로서는 이해되지 않을 정도다. 경우에 따라서는 위험을 무릅쓰고 모험을 감행하기도 한다. 한강에서 영화촬영중 빚어진 헬기 추락참사도 멋진 화면을 만들어 보이겠다는 촬영기사의 욕심이 화근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 열정을 나무랄 수는 없지만 목숨을 버리게까지 됐으니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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