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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핵실험 않고도 '핵보유 선언' 한 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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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방북한 미국의 민간대표단이 영변의 핵 시설을 견학하고 북한이 최근 재처리한 플루토늄을 확인했다는 보도에 대해 미 정부의 공식 반응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미 국무부 고위 관계자는 10일 "북한이 오래 전부터 써먹던 수법을 다시 사용하고 있다"면서 "미국의 민간대표단을 어떻게 활용하려는지 알고 있다"고 말했다고 워싱턴 포스트가 전했다.

6자회담이 막바지 물밑 협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이들을 이용해 조지 W 부시 행정부에 압력을 가하려 한다는 것이다.

뉴욕 타임스는 "북한은 자신들의 핵 능력을 보여줌으로써 파키스탄이나 이스라엘처럼 핵 보유국으로 대우받길 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핵실험을 하고 난 뒤 핵 보유를 선언하는 것이 가장 확실하지만 자칫 미국의 군사대응을 불러올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따라서 미국 과학자들을 불러다 슬쩍 플루토늄을 보여줌으로써 사실상 핵 보유 선언을 한 것과 마찬가지의 효과를 노렸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부시 행정부는 이 같은 북한의 '공세'에 대해 마땅한 대응책을 찾지 못해 고심하는 눈치다.

워싱턴 포스트는 "미국이 지난해 벌였던 외교적 노력이 과연 북한의 핵 개발을 차단한 것이냐"며 의문을 제기하고 나섰다.

북한은 이미 갈 데까지 다 갔는데 말로 엄포만 놓으면서 뭘 했느냐는 비판이다.

또 미 상원 외교위는 북한을 방문했던 지그프리드 헤커 박사 등을 오는 20일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시켜 북한의 핵 개발 상황에 대해 증언을 청취할 예정이다. 따라서 북한의 영변 핵 시설 공개로 촉발된 북핵 문제가 신년부터 미 언론과 의회의 중요한 이슈로 제기될 가능성이 커졌다.

당초 미국 정부가 민간대표단의 방북에 대해 "6자회담 논의에 혼란을 주는 행동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던 것도 이런 결과를 예상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미 헤리티지 재단의 발비나 황 연구원은 "미국 민간대표단의 방북은 대북 정책에 대한 부시 행정부의 입장을 곤란하게 만드는 한편 한국과 중국.일본 등에서 빨리 북핵 사태를 해결하라는 압력이 강화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민간대표단의 방북이 미국에 '양날의 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편 리처드 바우처 미 국무부 대변인은 9일 "6자회담을 위한 물밑 접촉이 계속되고 있다"고 강조하고 "미국은 대북 안전보장을 해 줄 준비가 돼 있으며 북한으로부터 핵개발을 불가역적이고 입증 가능한 방법으로 폐기하겠다는 분명한 신호가 있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도 북한에 대해 안전보장을 해 줄 것이라고 거듭 강조하는 등 미국은 하루빨리 6자회담을 통해 북핵 문제를 매듭짓겠다는 강한 의사를 표시 중이다.

워싱턴=김종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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