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시론

무엇을 위한 정상회담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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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남과 북의 정상이 다시 만나기로 했다는 정부의 발표는 전격적이다. 하지만 워낙 일찍부터 정치권에서 공방이 돼 온 일이라 새삼스럽지는 않다. 남북 정상회담이 필요하다고 보지만 실제로 추진하고 있지는 않다는 정부의 입장과, 대선정국의 국면전환을 노리기 위해 은밀하게 추진하고 있음이 분명하다는 야당의 반박이 1년도 넘게 이어져 왔다. 그렇다면 이번 정상회담은 그 의도에 대한 의혹의 눈길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열어야 할 만큼 좋은 성과를 보장할 것인지 판단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나 한반도의 장래를 위해 악수하고 덕담을 나눈다는 점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별로 없다. 하지만 차기 대통령 선거를 세 달 남짓 남겨 놓은 시점에 ‘강행’해야 할 만큼 급박한 현안이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정부 발표를 볼 때 이번 정상회담은 일단 하기로 해 놓고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지는 지금부터 논의하겠다는 식이다. 2000년 정상회담 당시 북한이 한 약속대로 김정일 위원장이 남한으로 답방하지 않고 한국의 대통령이 다시 평양에 가기로 한 것도 북한의 요구와 의도에 끌려 다닌다는 인상을 준다.

 북한과는 단순한 일회성 공연이나 교류행사를 추진하더라도 응당한 반대급부를 지불해야 하는 것이 상례다. 하물며 정상회담과 같이 비중 있는 이벤트를 놓고 북한 정권이 순수한 뜻으로 응하리라고 보기는 어렵다. 김대중 대통령과 같이 거액의 현금을 지불하는 전철을 되풀이할 경우 국민적 비판을 피하기 어려우리라는 것쯤은 쉽사리 예상할 수 있다. 이번에 만일 우리 정부가 현금지원 대신 북한에 대한 거대한 시혜 성격의 프로젝트를 약속하고 정상회담을 얻었다면 이 또한 큰 문제다. 장담할 수 없는 회담 결과 앞에 국민들의 간접적인 부담을 일방적으로 강요한 셈이 되기 때문이다.

 정상회담을 결정하기까지의 정치적 의도와 이면 합의의 내용이 무엇이건 간에 이번 제2차 남북 정상회담이 북한 핵 문제의 해결과 한반도의 평화정착을 위해 의미 있는 분기점이 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이를 지지하고 도와야 한다. 문제는 회담 결과의 무엇을 보고 북한이 진정 변했고 계속 변화해 가리라고 볼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질서를 염원한다는 말을 누구보다도 자주 해 온 것이 바로 북한이다. 핵 능력을 하나씩 제거하고 남북한 간 신뢰를 구축하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조치를 열거하고 약속하는 정상회담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정전체제의 해체를 말로만 합의하고 평화통일의 청사진을 미사여구로만 포장하는 선언적 평화가 정상회담의 주된 화두가 된다면 이는 또 한 차례의 정치회담에 그치고 말 것이다. 한국이 염원하는 자유민주통일의 길은 길고도 험난하다. 우리가 반드시 걸어야 할 중간과정 단계를 소홀히 하고 평화와 통일의 추상적인 결과물만 강조하는 만남이 돼서는 안 될 것이다. 지금 당장 들어서 기분 좋은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아니라 지금 당장 해야만 하는 실행조치들을 약속하는 정상회담이 되는지 지켜봐야 한다.

 남북 정상회담은 국민적 합의와 국제적 공조를 필연적으로 동반해야 한다. 국민과 그들이 선택하는 다음 정권이 지향할 대북정책과 동떨어진 원칙과 합의를 내놓을 경우 참여정부와 지금의 김정일 정권만이 생각하는 남북관계로 귀결될 것이다. 또 한국이 맺고 있는 미국과의 동맹관계와 중국·일본·러시아가 취하고 있는 기존의 한반도 정책을 입체적으로 검토한 연후의 대북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한반도 주위의 강대국들은 각기 딴 마음을 품고 있는데 우리만 ‘민족끼리’ 결론을 낸다 한들 대한민국의 외교적 고립만 가중시킬 우려가 있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남북 정상회담은 북한 당국이 아닌 대한민국의 뜻과 이익에 봉사하는 정상회담에 다름 아니다. 정상회담의 분위기에 현혹되는 대신 실제로 나타나는 결과에 주목할 때다.

김태효 성균관대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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