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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노트] 허다한 잡무에 앗긴 어느 큐레이터의 삶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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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지난 1일 밤, 부산시립미술관의 이동석(李東碩.40) 학예연구관은 자택에서 기획전 '센스.센스빌리티'의 도록에 실을 원고를 쓰느라 정신이 없었다. 원고지 60~70장 분량. 집필작업은 자정을 넘겨 계속됐다. 2일 오전 5시쯤 이씨가 갑자기 쓰러졌다. 부산대 병원에 실려갔다. 뇌동맥 파열로 인한 뇌출혈. 의식불명 상태가 일주일이나 이어진 9일, 이씨는 끝내 눈을 감았다. 마흔살 한창 나이의 그를 보내며 지인들은 '과로사'란 단어를 떠올렸다.

이씨는 1999년에 한 미술전문지에 쓴 '학예연구사 구보씨의 하루'란 글에서 자신의 미래를 예감한듯 "쓰러질까 두렵다" "나 그냥 이렇게 살다 장렬하게 전사할래"라고 고백했다.

"학예사는 '잡(雜)예사'라는 자조적 별칭이 붙을 만큼 '올 라운드 플레이어'로 생활한다. 연구자.디자이너.디스플레이어.출판편집 전문가.교육 담당자.소장품 기록가.홍보 담당자…. 가끔 구보씨는 자신이 미술관 전문직원인지 일반 행정공무원인지 혼동이 될 때가 있다." "미술관의 전문화된 업무와 일반행정 절차 사이에서 오는 괴리가 사람을 부대끼게 만들고 정신을 지치게 한다. 학예사가 행정에 통달하면서도 전문성을 살리는 것은 임신한 낙타가 사지를 펴고 바늘귀를 지나가는 것보다 힘들다."

'전시에 치여 떠밀려가는 실정'에서 몇 년을 견딘 그는 결국 "한국의 큐레이터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은 한계 상황에서도 끝까지 최선을 찾아가는 근성과 잡다한 스트레스를 견디는 내성일 것"이라고 말했지만 지친 육신은 그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홍익대 예술학 석사, 신춘문예 미술평론 당선, 대학강사를 거쳐 97년 부산시립미술관에 자리잡은 그의 직급은 6급 대우. 외국 미술관의 직제에서 일반화된 준전문 인력 한 명 없이 모든 일을 큐레이터 혼자 떠맡아야 하는 우리의 현실이 유능한 미술인 한 명을 희생시킨 셈이다.

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으로 취임한 미술평론가 김윤수씨는 "미술관은 고도의 전문교육을 받고 전문성을 지닌 학예직이 중심이 되어야 하는데 현재는 행정직이 총괄하는 체제로 되어 있고 학예직의 수도 절대 부족하다"며 학예직 수를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아직 학예직 증원 소식은 없다. 오히려 지역 시립미술관에서 올라오는 '불길한' 얘기들만 떠돈다. 시 공채로 2003년 4월 부임한 김영재 대전시립미술관장이 연말로 계약 해지되고, 3대 관장을 공개 모집하는 부산시립미술관은 시 간부가 선발위원회를 흔들고 있다는 것이다. 관장이 이 지경이니 학예사가 휘둘리는 상황은 절로 그림이 그려진다.

고인은 살아 있을 때 "미술관의 위상을 세우는 데에 관장의 일관된 의지와 역할은 절대적"이라며 "내부적인 장악력과 대외적인 방어력을 갖춘 관장의 의지는 좋은 큐레이터를 탄생시키는 토양이자 생명수"라는 말을 남겼다. 한국 미술계는 저 세상에서 들려오는 준엄한 충고를 뼈아프게 새겨야 한다.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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