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에서] "엘리트 대학 세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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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독일 사회가 '엘리트 대학' 설립을 둘러싼 논쟁으로 시끄럽다.

이 논쟁은 올해 초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하버드.예일.옥스퍼드대 같은 '엘리트 대학'을 독일에도 세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면서 시작됐다. 21세기 미국.일본과 어깨를 나란히 경쟁하려면 핵심인재 양성이 시급하다는 취지에서다. 집권 사민당(SPD) 지도부는 지난 5~6일 동부지역 바이마르에 모여 영.미식의 엘리트 대학을 10여개 육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정책 제안서까지 내놓았다.

시사 주간지 슈피겔은 엘리트 대학 설립이 '문화혁명에 버금가는 사건'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개별대학이 학생선발에 나설 수 있고 대학 간의 경쟁이 본격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독일 대학은 누구나 고교 졸업 후 자격시험(아비투어)에만 붙으면 진학할 수 있다. 학비는 거의 들지 않고 전국 대학이 평준화된 국립이다. 그러다 보니 최근 대학의 질이 하향 평준화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 결과 독일 대학의 교육 여건은 뒷걸음질쳐 왔다. 학생수(2백만명)는 넘쳐나는데 재정악화로 투자가 뒷받침되지 않아서다. 그래서 요즘 독일 대학생들은 정부의 교육정책을 성토하며 두달 넘도록 연일 길거리 투쟁에 나서고 있다.

현재 슈뢰더의 엘리트 대학 구상은 사면초가에 빠져 있다. 야당은 물론이고 같은 배를 탄 연정 파트너인 녹색당과 사민당 내에서조차 가시돋친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수준 높은 대학교육을 받을 기회를 소수가 독점하는 것은 평등권을 보장하는 헌법정신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다양한 인재양성에 걸림돌이 된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유권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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