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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9년 성별변경허가 1호 남자에서 여자로 24세 Y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7면

89년 6월 중순 어느날 Y씨(당시 20세·충북 괴산군)는 기대와 불안감에 휩싸여 청주지법정문을 빠져 나왔다. 『내가 정말 여자가 될 수 있을까. 법원이 신청을 기각하면 어쩐다….』
Y씨는 바로 한달전 당시만 해도 일반에게는 생소했던 「성전환 수술」을 받은 몸. 물론 남에서 여로호적을 바꿀 결심을 하고 치른 대 수술 이었다. 이날 Y씨가 법원을 찾은 것은「호적상 성별변경 허가신청」을 하기 위해서였다. 이로부터 보름정도 지난 7월5일 청주지법 천경송판사는 Y씨의 신청을 받아들여 성별 「남」을 「여」로 정정해주었다. 천판사는 『Y씨의 신체가 여성의 구조를 갖추고 있을 뿐더러 병리학적으로 「성전환증」이라는 의사의 진단이 있어 호적정정을 허가한다』고 판결의 이유를 밝혔다.
Y씨는 매스컴 등을 통해 공식으로 확인된 성전환에 의한 성별정정 1호. 성별정정 후 만 4년이 지난 「그녀」는 지금 어떤 모습일까.
90년 6월 그녀와 똑같은 이유로 서로 다른 두 김모씨가 낸 성별정정 신청이 여주지원과 천안지원에서 각각 기각·인정돼 사회적 논란이 된 적이 있다. Y씨의「오늘」은 그 논란에 하나의 마침표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Y씨는 지금 홀몸이 아니다. 그녀는 92년 봄 동갑내기 신랑과 화촉을 밝혔다. 그리고 시댁식구들과 함께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시어머니도 그녀를 귀여워해 주고 시아버지도 따뜻하게 대해준다. 며느리로서, 아내로서 그녀는 꿈꿔왔던 대로 만족한 「여자의 생」을 살고 있다. 현재 거주지는 시댁이 있는 경남 마산.
물론 Y씨의 남편은 아내가 성전환수술을 받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아니 이를 넉넉히 이해하고 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시댁 식구들은 Y씨의 과거를 모른다. Y씨는 얘기를 꺼내기가 두렵다고 한다. 『결혼 후 먹고 자고 편하게 살다보니 처녀 때와는 달리 살이 많이 쪘다는 그녀는 요즘 수영장과 에어로빅학원을 다니며 몸매관리에 열올리고 있다. 「과거」를 묻자 그녀는 얘기를 꺼내지도 말라 한다. 옛날은 기억에서 아주 지우고 싶다는 것. 또박또박 대담하는 목소리며 자태가 그렇게 부드럽고 고울 수 없다.
아버지 Y씨(60·농업)에 따르면 그녀는 「고추」를 달고 태어났지만 어릴 때 노상 여자아이처럼 놀았다는 것이다. 꽃 고무신과 인형을 좋아했고 고무줄 놀이를 즐겼다. 집안에서 그녀는 명목상 1남 2녀 중 막내로 외아들이었지만 실제 「언니」들과 스스럼없이 놀았다.
그녀가 성장하면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시기는 중·고교시절. 특히 남자고등학교 재학 중에는 매사 마음은 여자였건만 몸이 따라주질 않아 더 힘들었다. 그러나 Y씨만 해도 교복자율화세대라 유니섹스모드에 얹힐 수 있었던 건 그중 다행이었다.
고교졸업 후 농촌인 고향을 떠나 서울에 올라온 Y씨는 여자무용수로 한 업소에 취직했다. 이는 성전환자들의 예정된 코스. 이들은 일반 직장에 취업하고 싶어도 막상 엄두를 내지 못한다. 하지만 밤무대가 시골 「규수」인 Y씨의 정서에 맞을 리 없었다.
그녀는 낙향했고 아버지 Y씨는 사회적응에 힘들어하는 「딸」을 십분 이해했다. 아버지 Y씨는 촌부이지만 비교적 「깨인 사람」. 그는 수천만원에 달하는 수술비를 마련해 주며「딸」의 성전환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이 대목이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 예의 Y씨는「성전환증」이라는 일종의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이란데 주목해야 한다. 성전환증은 성도착증이나 변태 등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성 관련 질환. 단적인 예로 성도착자나 변태자가 상대성을 구분하지 않는 등의 특징이 있다면 성전환증 환자는 「몸 남자, 마음 여자」인 사람의 경우 여자와의 「관계」는 상상만 해도 징그러워할 정도다.
성전환증 환자를 처음대하는 성형외과·정신과전문의들은 『성전환증 환자에 대해 이론적으로는 잘 알고 있지만 막상 이들을 접하면 일반인들처럼 이상한 기분이 드는 것은 사실』이라며 『그러나 이들 환자를 계속 접촉하다보면 이상한 느낌은 사라지고 정말 딱하게 태어난 사람들이구나 하는 측은한 마음이 든다』고 한결같이 말한다.
성전환증은 염색체 등에는 전혀 이상이 없는 정신질환적 성격이 강한 병으로 성전환 수술이 거의 유일한 치료법. 예컨대 수술로 여자가 되었다 해도 아기를 가질 수는 없으나 부부생활이 가능하고 무엇보다 환자 본인이 새로 얻은 성에 크게 만족해하고 행복감을 느낀다.
Y씨는 지금 『더없이 즐거운 세상을 살고 있다』고 밝혔다. 덧붙여 『자신 같은 사람을 이해해 달라』고 사회에 부탁했다. <김창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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