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 재가동/“「열고문」 털고 업무효율 기대”(공무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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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더위와의 전쟁」 풀려 “박수”/“시대착오적 발상 다신 없어야”
공무원들에게 지난해 여름은 연옥이었다.
체감온도가 35도를 오르내리는 한증막같은 사무실에서 부채 하나로 「더위와의 전쟁」을 치렀던 길고도 짜증나는 나날들. 정말이지 다시는 생각조차 하기 싫은 기억이다.
「올해도 취임부터 예산절감을 외치는 대통령을 모시고 있는한 에어컨 바람쐬기는 글렀다」고 포기하던 차에 낭보가 터졌다. 6월 중순께부터 에어컨을 튼다는 것이었다. 『문민시대가 왔음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국민화합차원의 냉방해금이라….』 제1(광화문)정부종합청사 16층의 한 교육부 직원은 흥분한 나머지 에어컨 재가동조치를 바로 시국과 연관짓는다.
유달리 신체면적이 넓고 체중이 많이 나가 더위를 많이 타는 체질의 그는 『이러다가 부정타지…』하며 혹 예기치 않은 이유로 냉방 재가동 방침이 다시 취소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기색까지 내보였다.
지난해 여름 그의 행보를 보고 있노라면 눈물겹다는 말 이외엔 달리 표현할 길이 없었다. 오전 8시쯤 출근하는 그는 우선 아직 덜 뜨거운 오전 일과동안 체열을 줄이느라 「말과 움직임」을 최대한 자제했다.
정오 직전 후텁지근해지는 청사를 나가 간단히 점심(끓이지 않는 종류)을 마치고 그가 가는 곳은 길건너 D은행이나 H은행이었다.
공연히 공중전화를 걸거나 잡지를 뒤적이며 오후 1시 조금 넘어까지 불안한 「눈치피서」를 하고 돌아온 사무실은 이미 한증막. 창틀위에 놓인 한대의 낡은 선풍기는 20여평 사무실에 애초부터 도움이 안돼 찬물을 적신 수건을 목에 걸고 왼손엔 부채,오른손엔 펜을 든채 퇴근시간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건물전체가 이글거리는 불덩어리가 됐건만 충분한 중앙 냉·난방을 전제로 외국인에 의해 설계된 청사에서 열 수 있는 창문은 어른머리 하나를 겨우 내밀 수 있는 크기.
숨이 턱까지 차오는 열고문 때문에 업무효율이란 있을 수 없다. 저녁무렵 땀에 전 몸으로 퇴근해 찬물을 뒤집어쓰며 내일은 또 어떻게 견딜지,은행은 더 이상 눈총 때문에 국립중앙박물관에나 가볼 것인지,비는 좀 안내리는지,왜 공무원이 돼 이 고생을 하는지 온갖 회의와 짜증 섞인 생각으로 잠을 설쳐야 했다.
과천의 제2종합청사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노동부 이동근 서무계장은 오후가 되면 현관에 나가 쪼그리고 앉아 바람을 쐬던 직원들의 모습을 떠올린다. 『근무시간중 이석현상을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점심시간엔 관악산 계곡까지 배회하곤 했다』며 『공무원이라고 몸으로 희생하는 풍조는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천청사의 한 보사부 간부는 『에어컨 가동은 물론 선풍기 반입까지 금지해 심야·새벽시간에 007식 극비 반입작전을 벌였다』며 『청사 관리원들에게 적발돼 실랑이를 벌이는 촌극도 잦았다』고 회상했다. 서울 서부역 철도청건물의 세입자인 교통부는 특히 서울역과 접한 동쪽 사무실 근무자들의 애로가 커 창문을 열면 흙먼지와 함께 천둥같은 소음으로 전화통화까지 어려워 그야말로 「고통부」(?)였다.
잠실에 있는 환경처 직원들은 지난해 여름휴가 일정을 잡으며 낯을 붉힌 기억이 아직도 쑥스럽게 남아있다.
더위 때문에 치질로 고생했다는 모국장은 『예년같으면 7월 임시국회,쓰레기문제 등으로 6월부터 일찍 휴가들을 다녀왔으나 지난 여름엔 서로 7월말∼8월 중순에 빠져나가려는 통에 일정 조정에 진땀을 뺐다』고 털어놓았다.
2년만의 에이컨 해금을 맞은 우리 공무원들의 소감들이 이렇다.
『전력 절약보다 업무효율의 비교우위론….』
『다시는 시대착오적 발상이 없기를.』
『이젠 은행 피서의 설움이 없어지는가….』
『기왕 틀려면 시원시원하게 틉시다.』<김석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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