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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인질 살리려면 '침묵의 거래'시도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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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아프가니스탄 남부 칸다하르시에서 6일 현지인들이 한국인 인질 석방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트럭에 탄 한 시위 참가자가 "한국인 인질은 죄 없는 봉사자들이다. 그들을 석방하라"는 내용이 적힌 전단을 나눠주고 있다.[칸다하르 AP=연합뉴스]


"인질 석방 협상과 관련, '침묵의 거래(silent deal)'를 시도할 필요가 있다. 먼저 탈레반이 인질 일부를 조건 없이 풀어준다고 공표하며 석방한다. 아프가니스탄 정부는 탈레반이 석방을 요구하는 포로 일부를 나중에 조용히 풀어주는 방안이다. 한국 정부는 탈레반과 아프간 정부 사이에서 이런 합의가 도출되도록 움직인다."

본지의 아프간 통신원 알리 아부하산(가명)은 한국인 인질사태 19일째를 맞은 6일 이런 제안을 포함한 7신을 보내왔다. 그는 탈레반 전문가이기도 하다. 다음은 그의 취재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침묵의 거래'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제3국 정부의 약속 이행 보장이나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 사이에 신뢰가 전제돼야만 한다. 탈레반 지도부가 인질들과 맞교환할 핵심 포로 중 하나로 다로 칸(탈레반 전 가즈니주 지휘관)을 고집하지 않을 수도 있다. 형량을 다 채웠는데도 아직 아프간 감옥에 수감 중인 샤히드 칼 전 탈레반 교육장관이 유력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칼은 외국인 납치나 자살폭탄 테러 등에 관여한 경우도 없는 데다 이미 형량을 채웠기 때문에 아프간 정부가 풀어주기 쉽다고 볼 수 있다.

마침 납치를 주도한 탈레반 지도부는 "며칠 안에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에 따라 협상 조건 완화나 새로운 방안이 나올 수도 있는 상황이다. 탈레반 대변인을 자처하는 아마디가 5일 인질 추가 살해 위협을 현지 AIP통신을 통해 흘린 데 대해 탈레반 지휘관 압둘라는 6일 새벽 "탈레반 지도부는 그렇게 얘기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지휘계통에 혼선이 벌어지는 느낌이다. 압둘라는 오히려 "한국 정부협상단과의 대면 협상 여부에 상관없이 며칠 안에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면 협상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전화 협상이나 다른 방법으로 협상의 돌파구를 찾아 보겠다는 얘기로 들린다.

압둘라는 대면 장소를 놓고 한국 정부와의 협상이 진전을 보이지 않자 협상 자체보다 실질적인 내용을 따지는 쪽으로 방향을 튼 듯하다. 탈레반 지도부가 어떻게든 결과물을 내기 위해 적극성을 보이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된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고 있는 것은 한국 정부에 좋은 징조다.

인질 추가 살해 위협에서 보듯 아마디는 자신이 했던 말을 이미 몇 번 뒤집은 적이 있다. 그는 며칠 전 탈레반의 최고지도자 물라 오마르가 인질 사태를 총지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다 6일엔 "오마르는 최고위 지도자로, 대미 항전 등 큰일을 처리한다. 한국인 납치는 그에게 지엽적 문제"라며 자신의 발언을 뒤집었다. 내 판단으로 한국인 납치는 가즈니주 탈레반들의 독자적인 작품이다. 파키스탄 국경 산악지대에 깊숙이 숨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오마르는 누구와 연락을 하거나 구체적인 지시를 내릴 형편이 못 된다. 한국인 인질에 관한 결정권은 가즈니주 탈레반(사령관 물라 사비르, 부사령관 물라 압둘라)이 쥐고 있다.

정리=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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