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쪽 운전석」영국차의 교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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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영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누구나 처음 상당 기간 겪는 불편은 자동차가 좌측 통행을 하며 운전석이 오른 쪽에 있다는 것이다.
이곳 런던의 유럽부흥개발은행(EBRD)에서 근무한 지가 꽤되어 정착 단계에 들어선 지금도 『왜 영국에서는 자동차의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게 되었을까』하는 의문을 갖게 되는데 이에 대한 영국인들 나름의 해석을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은 풀이가 가능하다.
곧, 오른쪽 운전석의 연원은 「마차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마부가 채찍을 쓸 때 왼쪽에 있는 사람이 다치지 않게끔 마부석이 오른 쪽에 있게되었는데 이 같은 전통을 영국인들은 자동차 시대에도 그대로 고수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역시 자동차 운전석이 왼쪽에 있어야 기어 변속에 편리하고 세계 각국을 둘러보아도 영국처럼 운전석이 오른 쪽에 있는 나라는 영국을 모방한 일본 등 몇 나라에 불과하다.
마침 본국에서 신경제·신한국건설을 위한 여러 분야의 제도개혁이 모색되고 있음을 지켜보며 떠오르는 생각은, 때로 재정·통화·환율 등의 정책변수를 움직이는 것보다 오랜 기간 굳어져온 주변의 관행이나 관습을 고치는 일이 더 어렵고 더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영국이 마차시대의 관습을 자동차 시대에 맞게 고치지 못했다는 풀이가 맞다면 영국은 과거의 전통에만 집착한 나머지 세계 흐름에 뒤처지고 결국 영국병에 걸려 쇠락을 거듭하는 오늘날을 자초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마찬가지로 한국의 신경제 건설도 경제 각 분야의 주체들이 잘못된 관행과 관습을 새 시대에 맞게 고치려는 노력 없이는 어려울 것임은 자명하다. 우리의 금융 현실만 보더라도 고쳐야 할 잘못된 관행과 제도가 얼마나 많은가 하는 점을 이 곳 국제 금융의 중심지에서 다시 한번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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