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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뉴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맨해턴 남단에 위치한 뉴욕시에서 민원실을 찾기는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 같은 널찍한 민원실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사실 우리와 같은 개념의 민원실이 특별히 있는 것도 아니다.
모든 부서에 시민들이 볼일이 있으면 찾아가 상의할 수 있고 모두 개방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 같은 개념의 민원실을 굳이 찾는다면 선거구민실을 들 수 있다.
시장실 직속으로 되어 있는 이 선거구민실은 부시장이 최고책임자로 다른 부서에서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주민들의 청원을 받아 해결해주는 곳이다. 이 사무실은 아프리카 및 카리비안-아메리칸(흑인), 아시아인, 유러피언-아메리칸, 이민자, 라티노(남미계), 동성연애자, 예비군, 건축담당 등 중간단체나 일부 복잡한 업무중심의 8개 실로 나뉘어 있다.
각 실의 직원은 담당책임자를 비롯해 3∼5명으로 약30이다.

<부시장이 책임자>
이 선거구민실은 시장실 바로 뒤의 홈리스(거지들) 사무실이 있는 4층 건물 3층을 거의 차지하며 모두 별도의 사무실을 갖거나 같은 방을 쓰는 경우에도 모두 칸막이가 되어있어 여느 일반 사무실과 다름없다.
한국식의 만원실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세계최대의 도시로 민원이 많을 것으로 생각되는 뉴욕시가 이 같은 규모의 민원실로 충분한가라는 물음에 이 선거구민실을 책임지고 있는 부시장 조이스 브라운 박사는 『특별한 민원이 있을 때, 특히 행정처리에 문제가 있거나 고충이 있을 때만 개입하기 때문에 많은 인력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우리 나라에서처럼 민원실이 시민들의 행정요구를 접수해 해당 부서에 전달하는 단순행정작업은 이 사무실의 업무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업무를 전담하는 부서는 뉴욕시에는 없다. 시민들이 뉴욕시청에서 일을 보는데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단순한 것이면 해당 부서를 찾아가면 언제든지 해결된다. 모든 부서가 민원 부서이기 때문이다.
해당 부서를 찾아가기 전에 전화를 하면 절차에 관한 친절한 안내를 받을 수 있다. 시청에 볼일이 있다고 아는 사람을 동원할 필요가 없다. 시청이 특정인들의 전유물이 안되도록 시청 스스로 노력하고 있다.
시는 특정 용무가 있을 경우 이· 업무는 어느 부서에서 담당하고 어떤 허가나 승인이 필요한지를 설명해주는 책자 『그린북』을 매년 발행해 필요한 시민들은 언제든 10달러에 살 수 있다.
시장을 비롯한 고위간부들의 봉급까지를 밝히고 있는 포킷북 크기의 이 책자는 시민들이 시청을 접촉하는데 필요한 모든 정보뿐 아니라 주·연방정부에서 처리해야할 사항까지 설명해주고 있다.
한 예로 공원이나 길에서 음식행상을 하고 싶은 사람은 공원국에서 허가를 받도록 이 책은 설명하고 있다.
시청이 시민들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고 시민들의 세금을 위탁받아 봉사하는 기관이라는 인식이 공무원·시민들에게 모두 공유되어 있어 시청을 찾는 시민들이 위축되지도 않는다.
시장실을 비롯한 시청주변이 공원으로 되어 있어 날씨가 좋으면 산책하는 시민이나 거리의 악사, 그리고 거지들까지도 주변 벤치에서 즐기는 것이 시청이 곧 시민들의 것임을 느끼게 해준다.
열악한 치안사정을 반영해 건물에 들어가는데는 일단 면담하고자 하는 공무원의 이름을 대고 경비원이 그와 통화를 한 후 건물에 들여보내는 것이 조금은 거북하게 느껴지나 날로 심각해지는 치안문제를 이해하는 뉴요커들은 이에 불편을 느끼지 않는 듯한 분위기다.
시민들이 시청관련 민원을 해결하는 또 다른 방법은 변호사·회계사 등 전문가에 행정절차를 의뢰하는 것이다

<동료끼리도 고발>
이는 민원인이 시간이 없거나 일이 결코 단순하지 않은 경우다. 절차가 까다로운 건축이나 음식점개업 등 비즈니스와 관련된 업무가 여기에 해당된다.
이 과정에서 가끔 부정이나 부패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같은 부정은 시청 안에 이를 전담하는 조사과가 설치되어 있어 부정을 목격한 시민이나 관계자들의 제보를 받아 시정된다.
뇌물을 주는 사람이 이를 고발할 수도 있으나 대부분은 특정인에게 이권이 돌아가면 이에 피해를 본 사람도 있고 시민들의 평안이나 공익에 위배되는 경우 이들의 진정도 부정을 발견해 처리하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같은 공무원이 동료의 부정을 고발하는 수도 있다.
시장이 선거직이기 때문에 공무원간의 이해관계가 크게 엇갈릴 수 있어 25만 시공무원들이 서로를 견제할 수 있다.
시공무원들의 부정을 방지하기 위해 시는 시장부터 말단직원들까지 고용할 때 재산을 신고토록 하고 매년 이를 다시 보고하도록 하며 부실장이나 부과장급이상 간부들의 재산은 보고를 토대로 조사과가 엄격한 실사를 한 후 재산이 급증한 경우엔 이를 해당자로 하여금 석명토록 한다.
재산보고는 매년 4월에 이루어지며 동산은 물론 예금·주식 등 모든 재산과 특정단체에 관계하고 있는지를 포함해야한다.
시공무원들은 대부분의 단체에서 이사나 간부역을 맡는 것이 금지되어 YMCA같은 비이익단체에도 적용되고 있다.
1백20개 인종이 모여 살고, 시장이 선거직인 만큼 모든 인종그룹별로 나누어진 선거구민실은 처음부터 민원절차를 몰라 도움을 요청하거나 행정처리과정에서 불만이 있을 경우 도와주기도 한다.

<시조례에 규정돼>
선거구민실은 시민이 도움을 요청할 경우 해당 부서와 협의를 통해 문제의 요인을 분석하며 민원인의 서류미비가 원인일 경우 이를 보완토록 하고 행정상의 오류나 공무원들의 나태가 원인일 경우 즉각 처리해주기도 한다.
민원 처리기간은 시조례가 규정하고 있고 선거구민실도 시민의 진정을 받으면 사안에 따라 회담시한을 정해 통보해준다.
짧게는 2주, 길게는 한 달이 걸리는 것도 있으나 규정 밖으로 시간이 오래 걸리거나 보충이 필요한 경우도 민원인에게 알린다.
시장과 부시장은 1년에 두 번 장소를 옮겨가며 시민들과 타운회의를 갖고 시민들의 의견을 직접 들으며 정책질의에 응답한다.
시장의 주민들과의 모임은 지역텔리비전을 통해 중계되어 참석자는 제한되지만 실제는 많은 시민들이 참여하는 셈이다. 【뉴욕=박준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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