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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자 가시는 길 …1km 행렬 '장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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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1000여 명이 참가해 1km나 늘어선 화재 이우섭 선생의 장례 행렬이 장지인 반룡산 선산을 향하고 있다. 악귀를 쫓는다는 방상씨 탈을 쓴 사람이 행렬을 이끌고 있다, 혼을 모신 가마인 영거가 뒤를 따르고 있다.[사진=송봉근 기자]

영남 기호학파의 대표 유학자인 화재(華齋) 이우섭(76) 선생의 장례가 4일 전국 유림장으로 치러졌다.

전국 유림회의는 지난달 20일 노환으로 숨진 고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유교의식에 따라 초상난 달을 넘기는 유월장(踰月葬)으로 치러기로 결정했었다. 1997년 타계한 경북 청도의 한학자 박효수 선생의 유월장 이후 10년 만이다.

유림장은 오전9시 이 선생의 견친 월헌(月軒) 이보림(1902∼1972) 선생의 위패를 모신 경남 김해시 장유면 월봉서원 앞마당에서 유림과 제자 1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발인제로 시작됐다. 이어 사대부 장례의 맨 앞에서 악귀를 쫓는 역할을 했던 방상씨(方相氏)탈을 앞세우고 영거(靈車,혼을 모신 가마),잔상(향과 술잔을 담은 상), 200여개의 만장(輓章)과 상여가 뒤따르며 도심 속 장례행렬이 1㎞나 이어졌다. 상여 뒤로는 고인의 문하생과 유림 200여명이 전통 선비복장을 하고 뒤따랐다. 상여소리는 최덕수(63) 김해 국악연수원장이 앞소리꾼을 맡았고, 상여꾼들이 뒷소리를 받았다.

장례행렬은 장지인 장유면 반룡산 선산까지 2㎞를 가는 동안 장유면 화촌마을 입구와 고인의 선영에 있는 화산정사(華山精舍) 밑에서 두 번의 노제를 치렀다. 장지를 오르는 가파른 산길에서는 32명 상두꾼들의 숨가쁜 상여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어 하관의식, 제주제(題主祭)와 산신제(山神祭)도 열렸다.

고인은 율곡 이이,우암 송시열, 간재 전우, 석농 오진영으로 이어지는 영남 기호학맥의 후예인 아버지 월헌 밑에서 한학을 배운 뒤 평생 고향의 서원을 지키며 선비로 살았다. 평생 써 내린 시와 서(書)를 모은 27권짜리 화재집을 2000년에 내놓기도 했다. 고인의 자녀 4남3녀 가운데 막내인 준규(37·부산대 한문학과 교수)씨가 월봉서당을 5대째 운영하며 영남 기호학통을 이어가고 있다. 

김해=김상진 기자<daedan@joongang.co.kr>

사진=송봉근 기자 <bks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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