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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선 주가 조작' 이용호씨 6년 만에 입 열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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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호 12면

중앙포토

형광색 넥타이 차림으로 나타난 이 전 회장은 30대 후반으로 보일 만큼 활기가 넘쳤다. 그는 “나라 밥을 먹은(감옥) 덕분”이라는 농담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그는 특유의 전라도 억양으로 “그대로 뒀다면 G&G는 10대 재벌, 아니 5대 재벌 안에 들었을 텐데 갑자기 사고가 나부렀다”고 장탄식을 했다.

“당시 G&G그룹의 자기자본은 4500억원에 달했다. 부채비율도 10%에 불과했다. 두산그룹을 봐라. 주가가 15배 올랐고 덩치도 엄청 커졌다. 우리도 (두산 같은 성장이) 충분히 가능했다.”

이 전 회장은 보물선 인양, 금광 개발 같은 재료로 250억원대 차익을 챙긴 ‘주가조작의 대부’로 알려진 인물. 이 사건은 주가조작 과정에 정치권을 비롯해 검찰·국세청·국가정보원·금융감독원 등 핵심 권력기관 인사가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김대중 정권 시절 최악의 권력형 비리로 불거졌다.

이 전 회장은 자신은 ‘정치적 희생양’이었다고 주장했다. “이수동 아시아태평양평화재단 이사, 대통령의 처조카였던 이형택 예금보험공사 전무 같은 사람에게 로비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는 “나중에 돈을 많이 번 다음에 그 사람들이 자진해서 찾아온 것”이라고 해명했다.

현직 검찰총장의 동생인 신승환씨를 계열사 대표이사에 앉힌 것에 대해서도 “신씨가 신승남 검찰총장의 동생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는 “사외이사가 G&G구조조정전문 대표이사로 추천했을 뿐”이라며 “신승남씨 때문에 내가 죽었다. 신씨는 또 나 때문에 죽었다”고 말했다.

“상장회사에서 월급 한 푼 받아간 적 없다. 법인카드도 한 번 안 썼다. 회사 돈 6500만원을 횡령한 게 전부다. 사람들은 나를 ‘보물선 사기꾼’이라고 손가락질하지만 검찰 고소장에는 보물선의 ‘보’ 자도 나오지 않는다. (이용호 게이트의)실체는 아무것도 없는데 내가 뻣뻣하게 나오니까 ‘괘씸죄’를 적용한 것이다.”

2001년 9월 구속돼 징역 6년형을 받고 수감 중이던 그는 이해 관계자들의 증언 중 일부가 위증으로 확정돼 풀려난 상태. 현재 이 부분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이 전 회장은 출감 직후 서울 S호텔에 캠프를 차리고 전광석화처럼 재기를 준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현재 결백을 주장하면서 발 빠르게 재기를 모색하고 있다. 인수합병(M&A) 시장과 증권가에선 그의 ‘은밀한’ 움직임이 하나 둘 포착되고 있다. 이 전 회장이 재기 발판으로 삼는 것으로 알려진 회사가 ‘오빌홀딩스’라는 투자회사다. 오빌은 4월 25일 코스닥 상장법인인 네스테크의 자회사로 설립됐다가 7월 18일자로 계열 분리된 회사. 이 전 회장의 변호인인 오태희 변호사가 대표이사로 돼 있다. 오 대표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황금 산지인 ‘오빌(Ophir)’에서 회사 이름을 따왔다”고 말했다.

당초 자원 개발, 바이오 사업 등을 한다고 했던 오빌은 본업 대신 상장기업 투자 업무에 ‘올인’하고 있다. 지금까지 타 법인에 투자한 금액이 140여억원. 5월에만 파인디지털 지분 54만6800주(5.58%)를 ‘단순투자’ 목적으로, 파라웰빙스 지분 540만 주(20.07%)를 ‘경영참가’ 목적으로 사들였다.

단순투자 목적이라고 했지만 파인디지털은 이미 이 전 회장의 측근인 다른 사람이 적대적 M&A를 추진하던 회사. 휴맥스가 파인디지털의 백기사로 나오면서 이들의 M&A 계획은 수포로 돌아간다. 또 파라웰빙스는 주수도 전 제이유 회장의 소유로 알려졌던 업체로 이번에 오빌이 최대 주주가 됐다. 오 대표는 “투자 성적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아직 ‘황금의 땅’을 찾지 못한 셈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 전 회장 측은 2일엔 LCD 장비업체인 케이엘테크 60만 주(7.69%)를 사들여 최대주주가 됐다. 여기에 들어간 돈이 60여억원. 이 회사엔 코스닥 상장기업인 네스테크의 김모 대표이사가 등기이사로 참여하고 있다.

오빌 측의 거침없는 투자를 두고 관련 업계에선 ‘이용호의 재기작’이라는 꼬리표를 붙인다. 이 전 회장이 자신의 동서인 김모씨와 그의 지인인 박모씨가 지난 2월 공동 인수한 네스테크에 돈을 댔고, 이런 관계로 오빌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이 회사의 박모씨는 “김씨와 인연으로 신규사업을 담당하는 투자회사로 오빌을 설립했다”고 털어놨다. 네스테크 고위관계자 역시 “오빌은 이용호씨의 명의는 아니지만 실질적인 오너로 알고 있다”고 확인해줬다.

실제로 이 전 회장은 서울 서초동 H빌딩에 있는 오빌 본사에 매일 출근하고 있다. 이에 대해 오태희 대표는 “이 전 회장으로부터 경영 자문을 받고 있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이 전 회장은 “달리 갈 곳이 없어 오빌에 나오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 전 회장은 “지금은 푹 엎드려 있는 상황”이라며 “당분간 주식투자를 할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흥미로운 대목은 이 전 회장이 자신의 ‘재기 파트너’로 배아줄기세포의 권위자인 황우석 박사(전 서울대 교수)를 지목하고, 그에게 접근했다는 것이다. 네스테크 관계자는 “이 전 회장은 ‘상장기업 인수→신규 사업으로 바이오산업 진출→황우석 영입→주가 급등’이라는 그림을 그렸다”며 “이용호라는 ‘이름값’을 하려고 ‘큰 거 한 방’을 노렸다”고 전했다.

중앙SUNDAY 취재 결과 이 전 회장은 3월과 5월 두 차례에 걸쳐 황 박사를 만난 것으로 확인됐다. 또 5월께엔 이 전 회장의 지인인 보석상 김모씨를 통해 황 전 교수에게 10억원대의 연구자금을 지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서 양측의 주장이 엇갈린다. 황 박사의 한 측근은 “당시 황우석 팀이 광학렌즈 구입을 위해 돈이 필요했던 것은 사실”이라며 “연구자금 명목으로 돈을 받았지만 출처를 알고는 1시간 만에 돌려줬다. 언론에 밝혀져도 우리는 떳떳하다”고 전해왔다. 황 박사 측 해명에 대해 이 전 회장은 “노(No)”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황 박사를 만난 적도 없고 당연히 개입한 적도 없다. 당치 않은 일”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두 사람의 조합이 단순 해프닝인지, 부활을 위한 서곡이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이 전 회장 측의 움직임이 달라진 것은 분명해 보인다. 더 분명한 것은 이 전 회장이 ‘푹 엎드려만 있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용호씨는

전남 영광 출신의 이용호 전 G&G그룹 회장은 스스로 밝히길 “중학교를 마치고 학비가 없어 물고기를 잡고 나무를 해다 생계를 유지하던 소년 가장 출신”이다.

광주에서 버스 사업, 건설 시행업을 하다가 100여억원을 들고 서울에 입성한 것이 98년. 세종투자개발을 설립해 경기도 분당에서 부동산 사업을 벌였다. 주식 투자에 뛰어든 것도 그 무렵이다. “지인에게 수십억원을 맡겼는데 갑자기 사라졌다. 깡통 주식 때문이었다. 그날부터 소주 마시면서 주식을 독학했다. 집사람에게 1000만원을 빌려 증권 투자를 시작했다. 그 돈 가지고 처음 인수한 회사가 (G&G그룹의 첫 번째 상장회사였던) KEP전자다.”

그는 ‘명예회복’을 강조했다. “강압과 협박, 회유로 진실을 가릴 수 있지만 ‘이용호 게이트’는 다르다. 기록이 남아 있다”며 “그 기록을 하나 둘씩 모으는 중”이라고 말했다. 재기에 대한 집념도 분명했다. 그는 “고향에 계신 어머니는 ‘아들이 찬 방(교도소)에 있다’며 5년6개월 동안 단 하루도 보일러를 돌리지 않았다”며 “이것이 내가 성공해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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