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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껴봐, 영혼이 찢어지는 고통을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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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호 12면

‘리턴’에 출연한 네명의 배우.

긴장감으로 승부해야 하는 스릴러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논리다. 관객을 조였다 풀었다 하면서 막판까지 끌어가기 위해서는, 단서와 수수께끼를 적절하게 제시하면서 관객이 따라오게 만들어야 한다. 관객이 영화에 빠져들 수 있는 이유를 줘야만 하는 것이다. 그저 추격전만 늘어놓는다고 해서, 수수께끼만 연발한다고 해서 긴장감이 생기지는 않는다. 하지만 한국의 스릴러 영화는 오랫동안 ‘논리’를 잊고 있었다. 그저 기이한 상황들만 던져놓다가 마지막에 적당히 해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귀가 맞는 한국 스릴러 영화를 본 지가 언제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한국 스릴러 영화의 수작 ‘리턴’

소년, 살인자가 되다
이규만 감독의 ‘리턴’은 어떨까? 일단 영화를 보기 전에 알아둬야 할 사항이 있다. 아직 의학계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된 것은 아니지만 ‘수술 중 각성’이란 게 있다. 전신마취를 한 환자가 수술 도중 의식이 깨어나 수술의 과정을 어떤 형태로든 느끼는 것이다. 몸이 움직일 수 없는 상태이지만 의식이 깨어 있기에 수술의 고통을 그대로 느끼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런 경우 수술이 끝난 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시달리게 되며 심한 경우엔 수술 도중 쇼크사에 이르기도 한다.

‘리턴’은 수술 중 각성을 겪은 10살 소년 나상우의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심장수술을 받으면서 모든 고통을 느꼈던 나상우는 정신적 장애를 겪게 되고, 결국은 한 소녀를 살해하게 된다. 정신과 치료도 별 소용이 없자 의사는 최면을 걸어 모든 의식을 봉인한다. 그 후 나상우의 가족은 미국으로 떠나고 모든 기록도 사라진다. 25년 후, 외과의사인 류재우(김명민)에게 골치 아픈 일들이 벌어진다. 류재우의 환자였던 아내를 잃은 남자가 그의 아내도 죽이겠다며 협박을 하고, 어린 시절 친구였던 강욱환(유준상)이 20년 만에 급작스럽게 나타난다. 그리고 의사였던 아버지의 친구들이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정석을 지키는 스릴러
일단 범인이 누구인지는 추정할 수 있다. 사라졌던 나상우가 돌아와 자신을 수술했던 의사들을 죽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나상우가 어떤 모습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리턴’은 대상을 3명으로 제한한다. 일단 주인공인 류재우는 아니고, 미국에서 온 강욱환일 가능성은 있다. 그는 뭔가 숨기는 게 있고 이상한 행동도 보인다. 정신과 전문의 오치훈과 마취과 전문의 장석호도 용의자다.

그들은 류재우와 가장 가깝고, 이야기 전개에서 필수적인 인물들이다. 불특정의 연쇄살인범을 쫓는 경우가 아니라면, 일반적인 범죄영화나 소설에서 지켜야 할 원칙은 범인이 이야기 전개에서 필수적인 인물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리턴’은 정석으로 인물들을 배치한다. 용의자는 3명이고, 영화가 전개되면서 주어지는 단서들을 통해 범인을 알아내야 한다. 그리고 각자에게 뭔가 의심스러운 점을 하나 둘씩 보여준다.

‘리턴’은 스릴러 영화에서 필요한 요소들을 적절하게 구사한다. 용의자들 간의 다툼이나 의심스러운 고백과 정보, 몇 번의 반전까지 다 들어 있다. 약간 아쉬운 것은 모든 설명이 합당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억지스러운 설정도 있고, 불필요한 부연 설명도 있다. 하지만 그것들은 작은 흠집에 불과하다. ‘리턴’의 핵심적인 이야기는 아주 탄탄하다. 나상우는 자신을 살인자로 만든 계기를 주었던 의사들에게 복수한다.

이미 그가 죽었다면, 그의 가족에게라도 복수한다. ‘리턴’은 이미 노년에 이른 의사들의 죽음과 고통 대신 아버지의 실수 아닌 실수를 대신 갚아야만 하는 류재우의 고통을 그리는 데 더욱 주력한다. 중심인물을 아버지대에서 류재우로 끌고 옴으로써 ‘리턴’은 더욱 풍성해질 수 있었다. ‘리턴’은 단지 범인을 찾아가는 ‘논리’의 과정에만 집중하지 않게 된 것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리턴’은 류재우와 그의 아내인 서희진(김유미)에게 상당히 많은 이야기를 할애한다. ‘리턴’의 주인공인 류재우가 당면한 위협은 나상우가 아니다. 아내를 잃고 류재우에게 집착하는 남자가 더 위험하다. 그의 표적은 바로 아내인 서희진이다. 정체불명의 남자에게서 지속적인 위협이 가해지고 결국 서희진은 죽음에까지 이르게 된다.

나상우는 서희진을 죽이기 위해, 아주 교묘한 장치를 한다. 자신이 당했던 고통을 희진에게 돌려주는 동시에 죽음의 원인을 류재우에게 돌리는 것이다. 희진의 몸에 이물질을 삽입하여 류재우가 직접 수술을 집도하는 도중에, 그녀가 수술 중 각성을 하게 만든 것이다. 즉 희진의 사인은 극심한 고통으로 인한 쇼크 때문이고, 그 고통을 준 자는 바로 남편 류재우였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류재우는, 도저히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다. ‘리턴’은 수술 중 각성 때문에 살인자가 된 살인마의 이야기를 그리는 동시에, 수술 중 각성 때문에 지옥의 고통을 경험하게 된 남자의 슬픔까지도 함께 그리고 있다.

수술 중 각성이란 아이디어를 단지 이야기의 출발점으로 삼은 것만이 아니라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키워드’로 끌어올린 것이다. 그 결과 ‘리턴’은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의 스릴만이 아니라 고통 받은 자의 심정까지 절절하게 느껴지는 감성적인 스릴러 영화가 되었다.

‘리턴’을 더욱 인상적으로 만든 것은 의학드라마 ‘하얀 거탑’으로 확실한 스타가 된 김명민과 유준상·김태우·정유석·김유미 등의 호연이다. ‘리턴’의 모든 감정을 이끌어가는 김명민의 열연은 충분히 찬사를 받을 만하다. 김명민이 아니었다면, 류재우의 극심한 고통과 슬픔이 어떻게 표현되었을지 상상하기 힘들다. 독창적인 이야기와 안정된 연출력에 돋보이는 배우들의 연기까지 제대로 결합된 스릴러 영화가 바로 ‘리턴’이다. ‘리턴’은 한국 스릴러 영화의 도약대로 삼기에 충분한, 뛰어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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