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개혁 100일(무엇이 어떻게 달라졌나: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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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사정태풍/“체감기간은 1000일 이상”/초고강도에 허찔린 공직자들/YS “이제부터 시작인데 왜들 그러나”
김영삼정권은 다음달 4일로 출범 1백일을 맞는다.
그러나 국민 다수가 피부로 느끼는 「체감기간」은 1백일이 아니라 1천일 이상이다. 그만큼 변화가 컸다. 사실상의 혁명이라고 불릴만한 「위로부터의 개혁」이 워낙 단호하고 광범위했던 탓에 맨 먼저 개혁의 도마위에 올랐던 고위공직자들로서는 새정부 출범후 지금까지가 10년도 더 지난듯한 느낌이 들 것이다.
지난 2월25일 「신한국을 창조하자」는 슬로건과 함께 김 대통령이 취임했을 때만 해도 새정부가 내세운 부정부패척결·경제활성화·국가기강확립 등 이른바 3대과제는 일반국민들로부터 늘 있어온 구호이상의 대접을 받지 못했다. 5·16직후의 「재건합시다」,유신시절의 「총화유신」,5공의 「정의사회구현」과 별다른 차이를 인정받지 못했다. 정권초기에는 항상 그래왔다는 것을 군출신 대통령을 밑에서 30년 넘게 경험한 탓이었다.
○설마가 현실로
취임당일 청와대 앞길과 인왕산을 개방할 때만 보통사람을 자처했던 전임 대통령이 집권초에 손수 가방을 들고다닌 일 이상의 신선감을 줄 수 없었다. 1주일이 지나 김 대통령은 『5년의 임기중 기업이든 일반이든 어떠한 사람한테도 돈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으나 『설마…』하는 반응이 여전히 많았다.
그후 1백일가량 지난 지금 사회의 내로라하는 지도층은 물론 평범한 시민들도 김 대통령으로부터 『허를 찔렸다』는 소감을 털어놓게끔 됐다. 군과 정치권,교육계·금융계에서 검찰수뇌부에 이르기까지 사회전체를 들었다 놓은 것이나 다름없는 「대사정」이 미처 예상못한 강도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극소수 인사를 제외하고는 「허를 찔린」것을 매우 반기고 있다. 90%를 넘는 개혁정책에 대한 엄청난 지지율이 이를 입증한다.
김 대통령은 특유의 장악력과 돌파력으로 변화와 개혁을 주도해 왔다. 이른바 거점타격식 사정바람은 앞으로 어느방향으로 얼마나 더 불게 될지 짐작하기 어렵다. 『전례에 비추어 5개월만 참으면 된다』는 농담을 주고 받던 이들도 이제 5년내내 할지도 모른다는 짐작을 하게 됐다. 일과성에 그치지 않는 사정은 결국 우리 사회의 낡은 의식과 관행,병폐들을 고치고 긁어낼 것이라는 전망이 점차 굳어가고 있다.
○느슨하면 질책
김 대통령 취임후 가장 큰 충격은 3월8일 단행된 육군참모총장·기무사령관의 전격적인 교체였다. 「문민정부」의 위력은 이때부터 실감되기 시작했다. 뒤이어 재산공개 파동이 닥쳤다. 전·현직 국회의장을 비롯한 정치인과 관료 다수가 공직에서 쫓겨났다. 대입부정사건이 파헤쳐지고 부정하게 대학에 입학했던 학생들의 학부모 명단이 공개됐다. 군인사 비리파동과 하나회 숙청 등으로 김 대통령은 군의 면모를 일신하면서 통수권을 확실히 장악하는 이중효과를 거두었다. 아직도 진행중인 슬롯머신사건·동화은행 비자금사건은 우리사회의 「부패불감증」에 이미 강력한 소독제로 작용하고 있다.
개혁작업의 중간중간마다 김 대통령은 강력한 질책과 더불어 거듭 각오를 다지는 발언을 내놓았다. 『재산공개와 관련해 진정으로 참회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우리의 도덕적 불감증이 이 지경에 이르렀다』(4월9일),『개혁속도를 늦춰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데 이는 강물을 손으로 막으려는 것과 마찬가지다』(4월15일),『모든 것을 국민위주로 하겠다』(5월15일)는 발언들이 그 예다. 불교·기독교계 인사들과 만나서도 그는 일대 회개운동 또는 자정노력을 강한 어조로 당부했다.
그가 아니면 집단이기주의의 저항이 적지않았음을 것임에도 누구하나 드러내놓고 반발하지 못하고 있다.
새정부의 개혁작업은 시간을 넘어 역사적인 사건에도 시도되고 있다. 김 대통령은 4·19를 서슴지 않고 「혁명」으로 규정했다. 그는 또 12·12를 「하극상에 의한 쿠데타적 사건」으로 칭하고 관련 군장성들을 예편시켰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위상도 높여 놓았다. 30년이상 반정부로 일관했던 재야권 다수가 기꺼이 그의 개혁에 지지를 보내게 만들었다.
○재야서도 지지
3당합당으로 군사정권의 승계자와 손을 잡음으로써 집권의 기초를 닦은 김 대통령이기 때문에 그의 취임초에는 「호랑이굴에 들어가 호랑이를 잡았다」는 식의 화제가 만발했다. 외국의 언론에 트로이성에 목마를 넣어 성을 점령한 정치인으로 묘사됐다. 그러나 그의 목표는 호랑이 몇을 잡고 동굴을 손에 넣는 정도가 아니었던 것 같다. 40년동안 대통령을 꿈꾸어 온 정치인답게 그는 권력 자체보다도 집권이후를 더 면밀히 준비해 온듯하다. 속단하기는 이르나 대사정은 그런 면에서 변화를 위한 한 단초에 지나지 않으리라는 기대도 가능하다.
따지고 보면 역대 최다선의원이던 김 대통령은 구정치인중의 구정치인에 속한다. 그가 청산하려는 군사독재시대는 한편으로는 야당가의 「양김시대」였다. 이 때문에 군사독재와 함께 양김시대도 물갈이돼야 한다는 논리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가 끊으려는 부패사슬 역시 그 자신과도 무관하지 않았으리라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그러나 김 대통령은 부패구조의 마지막 고리를 끊고 깨끗한 정치의 첫 고리가 되고자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그 징후는 이미 도처에 나타나고 있다.
『1백일이 1천일 같다고들 한다』는 한 측근의 말에 김 대통령은 이렇게 대답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이제부터 시작인데 왜들 그러나.』<노재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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