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반도체 라인 가동 중단으로 국내 반도체 생산에 큰 차질이 빚어지게 됐다. 정확한 피해 상황과 규모가 파악되지 않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정전 범위가 넓은 데다 신규 라인 쪽에서 사고가 났기 때문에 피해가 예상보다 클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에 피해를 본 라인은 낸드플래시 메모리를 생산하는 4개 라인과 시스템 LSI를 생산하는 2개 라인 등 모두 6개 라인이다.
올 상반기 기준으로 5년 만에 최악의 실적을 낸 삼성전자는 최근 D램과 낸드플래시 고정거래 가격이 올라 3분기에 영업이익률이 크게 개선될 것으로 기대했으나, 전망이 불투명해졌다. 애플의 아이폰 출시 등으로 인해 낸드플래시 가격이 급격히 뛰고 있는데 생산 라인에서 정전 사고가 발생했다는 점이 삼성전자에 더 큰 충격을 주고 있다.
◆낸드플래시 공급 차질=업계에서는 이번 정전으로 최악의 경우 삼성전자의 올 3분기 낸드플래시 생산량이 15% 줄어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 경우 세계 시장 공급량은 7% 정도 줄어든다. 삼성전자의 낸드플래시 시장 점유율이 45%에 이르고 있기 때문이다. 올 들어 5% 공급 초과로 가격이 3분의 1로 떨어진 점을 감안하면, 삼성전자의 생산량이 감소해 현물 가격은 두 배 이상으로 뛸 가능성이 크다. 낸드플래시를 많이 사용하는 휴대전화.디지털 카메라.MP3 플레이어 등의 생산과 공급에도 연쇄적으로 문제가 생길 것으로 예상된다.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 아이폰의 영향으로 낸드플래시 가격이 올 들어 가장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어 삼성전자엔 회생의 기회였다. 세계 최대 반도체 중개업체인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올 3월 3달러 이하에 거래되던 4기가비트(Gb) 멀티레벨셀(MLC) 낸드플래시 가격은 이달 들어 7달러를 넘어섰다. 삼성전자의 주력 제품인 4Gb 싱글레벨셀(SLC) 가격도 3월 2.7달러 선에서 지난달 말부터 반등해 8달러를 돌파했다. 8기가바이트(GB) 메모리 용량을 갖춘 아이폰 한 대에 4Gb 낸드플래시 칩 16개가 들어간다. 애플이 내년까지 1000만 대의 아이폰을 생산할 계획이어서 여기에만 최대 1억6000만 개의 4Gb 칩이 필요하다.
D램익스체인지는 1분기 2.9% 공급 초과했던 낸드플래시가 2분기 0.6% 공급 부족으로 돌아서고, 3분기 1.4%, 4분기에는 3.15%로 공급 부족 폭이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삼성전자의 생산 차질이 장기화할 경우 공급 부족은 10%를 넘어가는 셈이다. 도시바.하이닉스 등 경쟁사들이 이번 사태를 주시하는 이유다.
◆8년 전 대만 피해 되풀이되나=1999년 7월 말 대만 전역에 걸쳐 발생한 정전 사고와 9월 말 발생한 지진으로 대만 반도체 업체들이 큰 타격을 받았다. 대만의 TSMC.UMC.윈본드 등 주요 반도체 업체들은 정전으로 15분 이상 공장 가동이 중단되면서 1500억원 이상의 피해를 보았다. 공정을 정비하고 재가동하기까지 1주일 이상이 걸리면서 대만 업체들의 8월 생산 물량은 최소 20% 이상 줄어들었다. 이에 따라 세계시장에서 3% 정도 반도체 공급이 감소했다. 당시 64메가 D램의 경우 그달 첫 주 4.85달러보다 올라 7달러 선을 넘어섰다. 세계시장의 10%를 차지하고 있는 대만의 생산 감소로 당시 한국 업체들이 반사이익을 누렸다. 99년 9월 지진 발생으로 대만 업계는 3300억원이 넘는 피해를 보았다.
박현영.고란 기자
◆시스템LSI=대규모 집적회로(LSI)를 하나의 칩 위에 올려 특정한 목적으로 동작하게 하는 주문형 반도체를 말한다. 디지털 카메라용 이미지센서, 모바일용 프로세서 모듈 등이 대표적 제품이다.
◆SLC.MLC=낸드 플래시에 데이터를 저장하는 방식이다. SLC는 저장 공간(셀)에 0 또는 1이라는 1비트의 정보를 저장한다. 이에 비해 MLC는 0과 1 사이에 전자를 반만 채우면 1비트의 정보를 더 저장할 수 있다. 같은 크기의 칩에 두 배의 정보를 담을 수 있는 셈이라 가격경쟁력이 높다. 그러나 데이터를 저장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SLC의 세 배 정도 걸리는 것이 단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