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조약』속속 비준… 밝은 미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6면

「미스터 유럽」으로 불리는 자크 들로르 유럽공동체(EC)집행위원회 위원장(67)은 요즘 흐뭇한 기분이다.
우선 유럽통합열차의 궤도를 가로막고 있던 마지막 걸림돌이 제거됐기 때문이다. 덴마크와 영국 하원이 각각 18, 20일 유럽의 경제적·정치적 통합을 위한 유럽동맹조약(마스트리히트조약)을 비준,「유럽합중국」이라는 종착역을 향해 다시 출발할 수 있게됐다.
또 지난 3월 실시된 프랑스 총선에서 자신이 속한 사회당이 참패하자 역설적으로 들로르의 인기는 더욱 치솟고 있다. 강력한 경쟁자였던 미셸로카르 전 총리는 자신의 지역구에서조차 낙선하는 수모를 겪고 있는 반면 들로르는 사회당의 유일한 대안으로 오는 95년 대권도전에 성큼 다가설 발판을 다지고있다.
85년 재무장관등 3년 동안의 각료생활을 뒤로하고 당시만 해도 별로 빛을 보지 못하던 EC집행위원장으로 밀려나 브뤼셀로「유배」를 떠나야했던 들로르였다.
그러나 들로르는 이제 EC역사상 가장 강력한 집행위원장으로 군림하며 유럽의 오늘과 미래를 상징하는「미스터 유럽」이 됐다. 마스트리히트조약의 입안과 비준, 지난1월1일 유럽 단일시장 출범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유럽을 만드는 주춧돌을 세운 인물로 EC사에 기록되고 있다.
EC집행위원장 들로르의 길이 그리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특히 지난해는 중도 하차설에 계속 시달려야 했다. 덴마크가 마스트리히트조약을 거부했고, 프랑스는 과반수를 간신히 넘겨 이 조약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유럽통합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되면서 유럽통화시장에는 대 혼란이 휘몰아쳤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미국과의 농산물협상이 결렬돼 무역전쟁 위기까지 치닫기도 했다.

<「유배지」서 부활>
지금 먹구름들은 차츰 걷히고 있다. 하지만 1년6개월의 잔여임기를 남겨놓고 있는 들로르의 기관차가 전속력으로 질주하기에는 아직 지반이 탄탄하지 못하다.
EC역내에는 모두 1천7백만명의 실업자가 거리를 헤매고 있으며, 침체의 늪에 빠진 경제는 제로성장에 머무를 것으로 예상돼 새로운 고용창출은 기대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83년과 90년 사이 EC는 단일시장 출범에 대한 기대감으로 9백40만명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다. 그러나 90년 이후 1백40만명이 순수실업자로 전락하면서 통합 열기도 식어갔다.
회원국들의 재정적자도 심각해지고 있어 마스트리히트조약이 규정하고 있는 금세기 말 통합조건을 충족시킬지도 의문이다. 심각한 경기침체 속에서 사회보장비를 줄여 이를 보전하려고 하니 통합에 대한 반발도 그만큼 거세지고 있다.
들로르 위원장은 최근의 상황을『유럽은 생존과 도태의 갈림길에 서있다』고 선언했다. 이는 유럽통합이라는 공든 탑이 붕괴할 위험에 처해 있음을 뜻한다. 또 들로르 자신의 프랑스대통령에 대한 야심도 이와 무관할 수 없다.

<재무장관 역임>
25년 파리에서 출생한 들로르 위원장은 45년부터 프랑스 중앙은행에 투신, 17년 동안 이곳에서 잔뼈가 굵은 뒤 국립행정학교(ENA)교수(63∼65, 74∼76년), 파리 도피네 대학 교수(73∼89년) 등 재계와 학계를 거쳤다.
74년 사회당에 입당하고 79년 유럽의회 의원에 피선, 경제통화위원회 의장직을 맡았다. 81년 사회당정부가 들어서면서 3년간 경제·재무장관을 역임했다. <고대훈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