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탁구는 아직도 여고남저인 것일까.
한국 탁구는 제42회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당초의 남강여약이란 전망을 뒤엎고 현정화의 세계 제패와 남자복식의 결승 진출 좌절로 귀결되는 희비 쌍곡선의 교차를 맛봤다.
김택수·유남규 등 세계적인 선수를 보유, 복식은 물론 단식·단체전에서도 은근히 성적을 기대했지만 불과 한달 여의 짧은 합훈 기간, 그나마 에이스 김택수의 무릎 부상 등 불충분했던 과정은 곧바로 불만스런 성적으로 직결됐다.
여자 팀도 사정은 매한가지로 모험 수를 띄웠던 현정화-박해정조가 16강전에서 탈락했지만 꿈도 못 꿨던 현의 단식 정상 등극으로 화려한 막판 역전극을 펼쳐 기사회생했다.
한국 탁구가 이번 대회를 통해 가장 값진 교훈을 얻은 것도 바로 이 대목에서였다.
개인 운동인 탁구에서의 관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뼈저리게 절감한 것.
다른 운동도 그렇지만 특히 탁구의 변화무쌍하고 정교한 기술은 하루 이틀에 쌓아지지 않는다.
2.74m 길이의 녹색테이블 위에서 초속 20m의 맞 드라이브 대결이 펼쳐지는가 하면 회전·무회전·횡회전, 또는 힘 조절에 따라 얼마든지 회전계수가 달라지는 갖가지 서브 등 연마에 오랜 시일이 요구되는 것이다.
88년 서울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천징(대만)이 현역 중국대표들을 여유 있게 따돌리고 결승까지 오른 것이나 결혼한 징준홍(싱가포르)이 세계 1위 덩야핑(중국)을 꺾을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오랜 관록에서 우러나온 저력 탓이다.
한편 이번 세계대회 특징은 유럽의 계속적인 약진. 남자단체전 1, 3위를 스웨덴·독일이 차지한데 이어 남자단식 4강 또한 유럽세가 독차지했다.
또 여자단식 준결승에서 현과 맞붙었던 바데스쿠(루마니아)의 선전은 놀라운 것이었다. 바데스쿠는 1년 전부터 일본 십육 은행 소속으로 뛰며 동양탁구를 거의 소화한 것이 주효한 것이다.
또 중국은 비중 큰 단식·단체전에서의 세불리를 점치기라도 한 듯 복식에 대단한 준비를 하고 나와 복식 3종목을 모두 휩쓰는 기염으로 복식에서 전통적인 강세를 보여온 한국 탁구의 입지를 한층 좁혀놓았다. 【예테보리=유상철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