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탁구선수권 결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한국 탁구는 아직도 여고남저인 것일까.
한국 탁구는 제42회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당초의 남강여약이란 전망을 뒤엎고 현정화의 세계 제패와 남자복식의 결승 진출 좌절로 귀결되는 희비 쌍곡선의 교차를 맛봤다.
김택수·유남규 등 세계적인 선수를 보유, 복식은 물론 단식·단체전에서도 은근히 성적을 기대했지만 불과 한달 여의 짧은 합훈 기간, 그나마 에이스 김택수의 무릎 부상 등 불충분했던 과정은 곧바로 불만스런 성적으로 직결됐다.
여자 팀도 사정은 매한가지로 모험 수를 띄웠던 현정화-박해정조가 16강전에서 탈락했지만 꿈도 못 꿨던 현의 단식 정상 등극으로 화려한 막판 역전극을 펼쳐 기사회생했다.
한국 탁구가 이번 대회를 통해 가장 값진 교훈을 얻은 것도 바로 이 대목에서였다.
개인 운동인 탁구에서의 관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뼈저리게 절감한 것.
다른 운동도 그렇지만 특히 탁구의 변화무쌍하고 정교한 기술은 하루 이틀에 쌓아지지 않는다.
2.74m 길이의 녹색테이블 위에서 초속 20m의 맞 드라이브 대결이 펼쳐지는가 하면 회전·무회전·횡회전, 또는 힘 조절에 따라 얼마든지 회전계수가 달라지는 갖가지 서브 등 연마에 오랜 시일이 요구되는 것이다.
88년 서울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천징(대만)이 현역 중국대표들을 여유 있게 따돌리고 결승까지 오른 것이나 결혼한 징준홍(싱가포르)이 세계 1위 덩야핑(중국)을 꺾을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오랜 관록에서 우러나온 저력 탓이다.
한편 이번 세계대회 특징은 유럽의 계속적인 약진. 남자단체전 1, 3위를 스웨덴·독일이 차지한데 이어 남자단식 4강 또한 유럽세가 독차지했다.
또 여자단식 준결승에서 현과 맞붙었던 바데스쿠(루마니아)의 선전은 놀라운 것이었다. 바데스쿠는 1년 전부터 일본 십육 은행 소속으로 뛰며 동양탁구를 거의 소화한 것이 주효한 것이다.
또 중국은 비중 큰 단식·단체전에서의 세불리를 점치기라도 한 듯 복식에 대단한 준비를 하고 나와 복식 3종목을 모두 휩쓰는 기염으로 복식에서 전통적인 강세를 보여온 한국 탁구의 입지를 한층 좁혀놓았다. 【예테보리=유상철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