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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독서편지] 윤동혁 프리랜서 PD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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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면

최준식 형에게.

오랜만입니다. 최형을 생각하면 항상 암반 위를 흘러가며 햇빛을 받아 빛나는 계류처럼 명쾌한 당신의 글이 떠오릅니다. 게다가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까지 곁들여져 있으니, 어쩌다가 인사동 한옥집에서 소주 한잔을 맞부딪칠 때 저는 고맙고 뿌듯한 마음이 들어 평소보다 많이 마시고 말도 많이 합니다.

'한국인에게 문화는 있는가' '콜라 독립을 넘어서' '신 서울기행' 등 전공인 종교학말고도 많은 책을 낸 최형에게 제가 "이 책을 읽어보시라"고 권하는 것은 결국 '죽음'에 관한 얘기를 더 깊게 나눠보고 싶은 뜻에서입니다.

우리의 교우가 그럭저럭 7~8년이 돼가지만 비교종교학을 전공하고 한국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최형이 '죽음학' 이라는, 매우 낯설고 음침한 느낌의 학문에 그토록 몰두하고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지난해 늦가을, 석촌호수 근처의 술집을 전전하며 새벽 5시에 TV 시작을 알리는 '동해물과 백두산이…'가 나올 때까지 마시면서 우리는 죽음이 현세와 결별하는 안타까운 게 아니라 새로운 세상으로 떠나는 가슴 설레는 여행이며, 우리는 죽음 때문에 돈과 감정을 낭비해선 안 된다고 얘기했었지요.

그러면서 최형이 꼭 읽어보라고 권한 책 '사후생(死後生)'을 편하게 봤습니다. 최교수가 직접 번역한 책을 그냥 보내주셨으니 저로서는 그야말로 땡을 잡은 기분이었지요. 지은이 엘리자베스 퀴불러 로스 박사는 죽고난 다음에 펼쳐질 또 다른 세상에 대해서 마치 잘 가꾸어 놓은 정원을 안내하듯 저를 황홀경에 빠뜨렸습니다.

사실 영혼 불멸과 사후 세계에 관한 한 최형의 발꿈치에도 따라가지 못하는 제가 감히 '읽어보시라'고 내미는 책은 '영혼의 마법사 다스칼로스'입니다. 처음 이 책과 마주쳤을 때 '마법사'라는 단어가 상당한 거부감을 주었지만 '기적이 일상인 어느 신비주의자의 신념과 영적 세계를 탐험한 비범한 기록'이라는 부제에 끌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산 책입니다. 그런데 키리아코스 C 마르키데스란 사회학자가(그는 회의주의로 단련되었다고 함) 쓴 이 책이 '본전'을 건져주었을 뿐만 아니라 저를 거의 전율에 떨게 만들어버렸지 뭡니까.

다스칼로스는 수십년 동안 제 가슴 속에서 저 혼자 굴러다니다가 곰팡이가 필 지경이 된 세상사의 의문을 거침없이 풀어주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신의 전지전능한 계획과 인간의 자유의지는 모순되거나 귀속되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도 미리 기록되어 있지 않으며 미래는 영원한 현재 속에서 끊임없이 창조된다"는 등의 사실을 이해하라고 설파한 부분은 큰 도움이 됐습니다.

새해에는 최형과 함께 낯설고 침울한 '죽음학'을 친근하고 화사하게 꾸며보고 싶네요. 그리고 다스칼로스가 말한 것처럼, 자, 이제 우리의 카르마를 즐겁게 짊어지고 일어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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