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상된 뇌 기능 전기 자극으로 '기적의 회복' 식물인간 6년 만에 깨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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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인간이나 다름없이 6년 동안 병상에 누워 지내던 환자가 깨어나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그는 지금 TV를 보거나 가족과 카드놀이까지 한다. 그가 이렇게 된 것은 특별한 약물 때문이 아니다. 뇌에 지속적인 전기자극을 받은 것이 효과를 본 것이다.

영국의 과학전문지 네이처 최신호(8월 2일)는 이런 내용의 미국 클리블랜드 클리닉 신경회복센터 알리 레자이 박사의 연구 결과를 실었다. 레자이 박사는 논문에서 "뇌손상으로 6년 넘게 준식물상태에 있던 남성이 뇌심부 전기자극술을 받고 뇌 기능의 일부를 회복했다"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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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을 찾은 환자가 병원에 왔을 때는 강도의 공격을 받고 두개골이 파열돼 준식물상태에 빠진 뒤 눈과 손가락만 이따금씩 움직이는 상태였다. 물론 24시간 꼼짝없이 누워 지내야만 했다. 레자이 박사는 환자의 가슴 쪽 피부 밑에 전기가 발생하는 배터리를 심었다. 가는 전선을 머리 쪽으로 연결해 뇌의 시상부(視床部)에 장착한 전극과 연결했다. 전극은 컴퓨터가 만든 뇌 지도와 뇌의 3차원 영상을 이용해 정확하게 뇌의 시상부 중심시상에 설치했다. 이곳은 통증.감정.의식 정보를 받아들여 대뇌에 전달하는 중계탑 역할을 하는 곳이다.

환자는 전기자극을 주기 시작한 지 48시간 뒤 소리가 나는 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눈을 뜨고 있는 시간도 길어졌다. 또 시간이 지나면서 물건의 이름을 말하고, 빗으로 머리를 빗을 정도의 행동을 했다. 16개의 단어를 말할 정도로 상태가 좋아졌다.

뇌심부 전기자극술은 새로운 시술법이 아니다. 지금도 파킨슨병 환자의 보조적 치료 방법으로 국내에서도 널리 활용되고 있다. 환자의 시상하부에 전극을 넣어 손 떨림이나 이상운동을 통제한다.

서울대병원 신경과 전범석 교수는 "파킨슨병 환자는 시상하부의 지나친 활동으로 이상운동을 보이는데 이 부위를 전기자극으로 억제하면 운동 기능이 호전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뇌심부 전기자극술이 인지 기능을 호전시킨다는 연구 결과는 없었다.

레자이 박사는 기존의 시술 방법을 이용했지만 전기자극 부위를 바꿔 준식물상태 환자의 의식을 깨우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뇌심부 전기자극술이 모든 식물인간에게 적용될 수는 없을 것으로 본다. 이번 환자는 '최소한의 의식 상태(MCS: minimally conscious state)'로 실제 거동은 못하지만 대뇌는 살아 있는 경우였다. 전기자극을 통해 망가진 스위치를 켜준 셈이라는 것이다.

황세희 전문기자.의사

◆뇌심부자극술(腦深部刺戟術)=가슴에 심은 배터리를 통해 뇌에 심은 전극으로 미세한 전류를 흘려보내 자극하는 시술법이다. 뇌에 전극을 심는 곳은 대뇌활동을 위한 정보가 거쳐 가는 시상부다. 시상부는 통증.감정.의식을 조절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시술법은 현재 운동 이상을 보이는 파킨슨병 환자에게 널리 쓰이고 있다. 지난해 건강보험이 적용된 이후 연간 200여 건이 시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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