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경제 잡는 길은 실명제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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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김영삼 정권은 취임 후 문민정부를 표방하며 대통령 별장과 인왕산·청와대 앞길을 개방하고 권력층의 재산을 공개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개혁은 알맹이 없는 껍데기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국민 절반이상이 집이 없는 상황인데 가진 자들의 재산만 공개한다고 해서 경제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이러한 재산공개는 필요한 것이면서도 부정비리 축재 당사자들을 막지 못한다.
이것은 가진 자들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현재의 법적·제도적 장치로는 근본적 비리 재산축재의 통로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장치는 금융실명제를 실시하는 것이다.
금융실명제란 쉽게 말해서 은행에 예금·적금을 들 때 혹은 주식이나 채권을 살 때 자기 이름으로 거래하는 것을 말한다. 자신의 이름으로 금융거래를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소수의 가진 자들은 상식 밖의 행동으로 광범위한 비실명거래를 통해 거대한 지하경제(GNP의 19%, 23조 5천억원)를 형성하고 투기·탈세·부정축재를 만연시키고 있으며 우리나라 경제를 좌지우지한다.
금융실명제는 다수의 국민과 국가경제에 이익이 돌아가는 제도다. 그 이익을 살펴보면, 첫째, 사채시장·부동산투기·향락산업 등의 지하경제를 근원적으로 척결할 수가 있다. 요즘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는 정덕진 3형제의 경우를 보면 가명계좌를 2백여개나 갖고 있으면서 탈세를 통한 음성적 재산축재를 해왔는데도 그동안 적발하지 못하고 방치해둔 것만 보더라도 금융실명제의 필요성을 알 수 있다.
둘째, 정경유착으로 인해 야기되는 부정부패 구조를 와해시키고 정치자금·뇌물을 경제시설 투자·연구개발투자로 돌려 경제가 활성화될 수 있다.
셋째, 거액의 지하경제자금을 통한 주가조작 및 내부거래 등이 어려워지므로 증권시장이 정상화될 수 있다.
넷째, 금융거래 추적을 통해 상속세·증여세·부가가치세·사업소득세·부동산 관련세 등의 탈세가 줄어들어 국민 조세부담의 형평성을 되찾을 수 있다.
이 금융실명제는 90, 91년 법률적 준비작업을 다했기 때문에 김영삼 정권의 실행의지만 남아있다. 가진 자들의 투기적 재산축적 구조를 금융실명제로 차단하여 현재 심각한 경제위기의 근원적 원인을 뿌리뽑는 것이 김영삼 정권의 개혁 본질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현정권이 진정한 문민정부라 한다면 국가경제와 다수의 국민들에게 많은 이익이 돌아가는 금융실명제를 즉각 실시해야 한다. <최해란(광주시 서구 농성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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