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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축의 제2해양시대/김진현(시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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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30년만에 목포를 보았다. 그리고 강렬한 충격과 감흥을 받았다. 「구조적」문제를 대하는 중앙시각의 한계도 통절히 느꼈다.
목포가 신작로로 시작한 우리나라 국도1호와 2호의 기점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목포는 목포∼경성∼신의주(신의주∼목포가 아니라)로 가는 국도 1호(9백39.1㎞)의 기점이요,목포∼부산으로 가는 국도2호(3백53.6㎞)의 기점이었다. 전목포시청이었고 지금은 유치원이 된 곳에 초라하게 국도 1,2호 기점 표석이 서있다.
○해방후 목포 계속 침체
전국의 대역사를 취재하기 위하여 전북임실의 섬진강댐의 공사와 목포항확장(심학도개발) 공사 현장을 찾아 간지 꼭 30년만에 목포의 유달산,유지가 된 삼학도와 허허벌판,썰렁한 대불공단을 밟았다. 한국미래학회는 지난 한 해 계속한 산시리즈에 이어 금년에는 물을 주제로 잡고 「신한국과 서남해안개발」의 첫 연구발표를 지난 15일 목포에서 가졌다.
30년만에 가는 목포행 비행기 속에서 나를 지배한 상념은 어찌하여 30년이나 지나서야 목포에 가게 되는가 하는 의문아닌 의문이었다. 몇년만에 가건,몇번을 가건,어디를 가건 그게 무슨 대수냐 한다면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지난 30년 언론인·경제개발연구자·국무위원으로서 부산·울산·포항·강릉·창원(마산)도 여러차례 방문했거늘 어찌하여 해양화를 착안하고 이 문제에 매달려온 내가 이제서야 목포에 가게 되는가.
그것은 구조적인 것이었다. 일반의 평균적 사회활동·경제활동이 목포 이외의 지역에서 이루어지도록 보이는 손에 의해 설정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조화의 단초는 경제 지리적인 것이었다. 해방후 우리나라 해양화발전의 축이 부산∼동경∼미국이었다는 것과 호남의 토착농업자본이 순조롭게 산업자본화하는데 실패한데 연유한다. 그러나 이런 단초와는 상관없이 그 후의 구조화는 정치 지리적인 것이 명백하다.
연세대 최정호교수는 1910년에 착공한 대전∼목포간 호남선 철도가 4년도 안돼 개통이 되었는데 그 일부구간에 불과한 대전∼이리간 88.6㎞ 복선공사는 1968년에 착공,10년이 걸렸다고 했다. 같은 해 착공했으며 건국후 최대공사인 4백28㎞의 경부고속도로가 2년5개월만에 완성된 것과의 비교는 극명하다. 최 교수는 『목포는 밑이 아니라 위요,뒤가 아니라 앞이라 할 수 있다. 목포에 이웃한 해남군의 이른바 「땅끝」(토말)은 태평양 시대에는 땅끝이 아니라 땅의 시작이라해서 마땅한 것이다』고 강조하는 대목에서 목포사람들의 그 한이 씻기는 듯 남들이 해주는 대변에 감동함을 볼 수 있었다.
그날 밤 1997년 목포개항 1백주년 기념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목포백년회의 부회장되시는 분은 세미나를 참관하고 밤새 울었다고 한다.
○정치지리적 요인 때문
서울대 김형국교수의 발표에 의하면 목포의 침체는 전국 도시와의 순위경쟁에서 차츰 밀려나는데서 특히 확인되는데 1960년에 전국 9위였던 것이 75년엔 12위로,80년엔 14위,90년 19위,다음해인 91년엔 22위까지로 전락하고 만다. 도시체계 안에서 이처럼 급격히 퇴조하는 것은 지극히 예외적이고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들다고 한다. 1930년대에는 6위였다니 해방후 목포는 발전의 목포가 아니라 후퇴의 목포였다.
목포후퇴의 구조화가 정치 지리적인 것이라면 신한국의 새 구조는 이런 후퇴구조를 발전구조로 바꾸는 정치여야 할 것이다. 한달전 32년만에야 목포출신 시장이 출현했다는 것이 아주 작은 출발일 수 있다.
목포는 아름다운 곳이다. 유달산과 노적봉과 다도해의 풍경이 아름답다는 뜻이 아니다. 향토문화회관에 기증한 소지·미산·남농으로 이어지는 운림산방삼대의 그림과 그 화맥이 아름답다. 작고한 아내에의 추념과 부부의 고향사랑 뜻이 담뿍 담긴 중앙대 김성훈교수 기증의 희귀 조가비·꽃돌의 모습이 아름답고 그 뜻이 아름답다. 고박화성문학기념관이 옛날 아름다운 목포의 추억을 되새기게 하고 수석과 신안유물들도 아름답다.
가장 아름다운 것은 목포의 시민정신이다. 정치가 가혹하여 목포를그리도 메마르게 했는데도 정치도 관도 아닌 시민정신·시민자발운동이 향토문화회관을 만들고,조각공원을 만들고,유달산의 판자촌을 자신철거시키고,용해동에 목포문화예술회관을 건립케 하고….
목포의 문화,호남문화가 발효시킨 애향심과 근대시민정신이 합쳐진 시민과 유지들의 자발운동을 눈으로 그리고 「해력」과 「순」 매실주의 맛으로 확인하는 감격을 잊을 수 없다.
○「호남국제화」 기지돼야
한국은 동축단선의 해양화시대에서 제2의 해양화시대를 맞고 있다. 이 한국 제2의 해양화는 먼저 아시아­태평양의 다양성을 배우고,전세계 해양화 과정에서 아시아인의 공동문화를 창조하는데 주역을 담당해야 한다.
목포의 눈물과 울음을 거쳤으니 이제 웃음이 와야 할 차례다. 그토록 풍부한 음식과 예술과 다도해의 문화가 꽃피어야 한다. 목포의 눈물과 호남의 예술문화,호남인의 국제화를 통해 한국 제2해양화의 새 서남축을 세우고 아시아인의 새 공동문화를 창조하는 산실이 되어야겠다.<칼럼니스트·고려대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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