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주제 대화록-『남과 여』|대조적 「주부 순결론」 설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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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바이런의 풍모를 지닌 40대의 잘생긴 철학자와 여든을 바라보는 여성 명사가 만나 남녀간의 사랑을 주제로 얘기를 나눴다.
섹스·질투·욕망·결혼·순결 등으로 이야기가 이어지면서 두사람의 대화는 한없이 계속됐다. 얘기가 끝난 뒤 두사람은 자기들의 대화를 책으로 엮어냈다. 현대 프랑스의 젊은 지성의 상징처럼 돼 있는 베르나르 앙리 레비 (44)와 50∼60년대 프랑스 여권 운동의 기수였던 프랑수아즈 지루 (76)의 대화를 묶은 『남과 여』 (Les Hommes et les Femmes)란 책이 프랑스 출판계에 화제가 되고 있다.
이 책은 발매 1주일만에 초판 8만부가 매진되는 돌풍을 일으키면서 단숨에 비소설부문 베스트셀러 1위에 올라 있다.
사랑이란 진부한 주제를 다뤘음에도 이 책이 폭발적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두 사람이 프랑스에서 누리는 지명도에도 이유가 있겠지만 대화 전체를 통해 두 사람의 상반된 견해가 부딪치면서 벌어지는 불꽃튀는 설전이 독자들의 흥미를 자극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70년대 프랑스 신철학의 기수였던 레비는 두번 결혼에 실패한 경험이 있으며 시사 주간지 렉스프레스의 창간 멤버였고 우파 정권 아래서 여성 장관 등 두차례나 각료를 지낸 바 있는 지루 역시 결혼에 한번 실패했다.
남녀간 사랑에 관한 두사람의 견해는 너무도 대조적이다. 지루는 이 책에서 『성적으로 한사람만을 사랑하기에 인생은 너무 길며 부부간 순결은 아무리 길어야 15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레비는 자신의 경우를 예로 들어 『한 여자에 대한 나의 욕망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있지만 단지 다른 열정으로 그 욕망을 대체하고 있을 뿐』이라면서 『평생동안 한사람만 사랑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플라토닉 러브 (정신적 사랑)에 대해서도 지루는 그 가능성을 믿는다. 레비는 『미친듯이 한 여자를 원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그 여자를 사랑한다고 할 수 있느냐』고 반문하며 『플라토닉 러브는 농담 같은 얘기일 뿐』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성적 매력의 본질에 대해서도 대조적이다. 지루는 『못생긴 남자에 대해서는 결코 성적 매력을 느낄 수 없었다』고 털어놓으면서 『장 폴 사르트르가 지적으로 매력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육체적으로는 혐오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레비는 자신은 종종 못생긴 여자에 대해서도 성적으로 끌리는 경우가 있다면서 『욕정이란 별난 것이어서 목소리·옆모습·미소·이름·한마디 말… 그 어떤 것에 의해서도 촉발될 수 있는 것』이라고 지루의 「용모 우선론」을 반박하고 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상반되는 견해에도 불구하고 두가지 점에서 두 사람은 생각이 일치하고 있다. 미국의 여권 운동이 지나치게 공격적이어서 남녀 관계에 손상을 입히고 있다는 점, 그리고 비록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프랑스의 남녀 관계가 세계에서 가장 낫다는 점이 그것이다. 【파리=배명복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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