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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번 막힌 취업 … 국경 넘어 뚫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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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서자원(25.여)씨는 요즘 시간날 때마다 일본 도쿄(東京)의 지하철 노선도를 들여다본다. 지난해 11월 19일 이후 생긴 습관이다. 그 날은 일본의 시스템통합(SI)업체 세곳에서 합격 통보를 받은 날이다. 2002년 2월 대학졸업 후 가장 큰 성취감을 맛본 날이기도 하다. 지난 2년간 국내에서 그토록 원하던 일자리를 잡지 못했던 그는 이달 말께면 도쿄의 직장여성이 된다.

# 좌절

명지대 전기정보제어공학과를 졸업한 서씨의 꿈은 데이터 베이스 전문가가 되는 것이었다. 대학 3학년 때부터 데이터를 관리하는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푹 빠졌다. 친구들과의 모임 대신 컴퓨터 학원을 드나들었다. "이걸 '밥벌이'로 삼으리라"는 결심도 그때 했다. 졸업 전에 오라클 등 세계적인 정보기술(IT)기업들이 인정하는 국제자격증을 3개나 땄다. 남들은 "그 정도 실력이면 취업은 걱정 없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졸업 직전 몇몇 대기업을 노크했으나 벽을 느꼈다. 그래서 중소기업으로 눈을 돌렸지만 입사지원서를 낸 50여개 업체에서 아무런 답변이 오지 않았다. "프로그래밍은 밤샘작업이 많아 여자에겐 맡길 수 없다"는 등 냉담한 반응만 왔다. 마냥 놀 수만은 없어 학원강사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2002년 말 우연한 기회가 왔다. 친구로부터 일본 이야기를 들었다. 한국의 전문가들을 높게 쳐준다는 것이다.

# 도전

"고3 때보다 공부를 더 많이 했어요."서씨는 지난 1년간을 이렇게 회고했다. 지난해 1월 무역협회가 운영하는 무역아카데미를 찾았다. IT 전문지식을 교육, 일본기업에 취업하도록 도와주는 과정이다. 1년간 3백50만원의 비용이 들었지만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했다.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에 부모님의 도움을 받았다.

만만치 않은 과정이었다. 난이도가 더 높은 컴퓨터 공부를 하고, 처음 배우는 일본어도 의사소통에 지장이 없을 만큼 익혀야 하기 때문이다. 강의는 오전 8시부터 오후 9시까지 계속됐다. 일본어와 IT교육.자율학습 등이 반복됐다. 집으로 돌아가서는 그날 배운 것을 복습하고 더 필요한 분야를 따로 공부하느라 밤을 새운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 노력끝에 컴퓨터 관련 자격증을 8개로 늘릴 수 있었다. '악바리' 근성을 보인 것이다.

지난해 11월 드디어 일본어로 작성한 이력서를 들고 일본행 비행기에 올랐다. 무협이 추천해준 업체와 면접을 보기 위해서다. 이틀간 4개 기업의 인사 담당자를 만났다. 결과는 3승1패. 합격통지를 받았다는 소식에 전북 전주에서 농사를 짓는 부모님은 "장하다. 너를 믿는다"고 격려해줬다.

# 미래

서씨가 선택한 회사는 도쿄에 있는 PDS라는 시스템 통합업체다. 컴퓨터 프로그래머들을 기업들에 파견해 컴퓨터시스템을 설계.관리해주는 일을 한다. 서씨의 연봉은 3백10만엔 정도(약 3천3백만원)다. 일본 물가를 고려하면 '큰 돈'은 아니다. 그는 "경력을 더 쌓아 몸값을 몇배로 올릴 것"이라고 다짐했다.

숙소는 도쿄 서부의 코마에 역 인근에 잡았다. 인터넷을 통해 도쿄에 유학 중인 한국인 여학생을 룸메이트로 구했다. 서씨는 "막연히 취업을 걱정하기보다 대학 때부터 자기가 일할 분야를 고민하고 준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좌절해서는 안된다"며 "후배들에게'찾아보면 힘들지만 길은 있다'고 얘기하고 싶다"고 했다.

글=김승현 기자 , 사진=앙광삼 기자

*** 해외 취업하려면…

국내 취업이 '하늘의 별따기'가 되면서 해외 취업에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정부는 산업인력관리공단(www.worldjob.or.kr)을 통해 해외 취업을 위한 교육 및 알선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올해 해외 취업 및 해외 인턴사원 등으로 2천명을 취업시킬 계획이다. 해외 업체가 필요로 하는 교육을 민간 교육기관에 위탁한 뒤 해외 취업까지 연결해 주는 방식이다.

수시로 관련 홈페이지 등을 확인해야 하며, 교육기관의 공신력과 취업 보장 정도를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무역아카데미가 운영하는 IT마스터 과정은 무역협회의 일본 기업 네트워크를 활용해 취업 기회를 제공한다. 중앙일보 ITEA 등 여러 민간 교육기관도 산업인력관리공단 등과 연계한 교육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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