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사태의 진상규명(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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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2·12사태가 「하극상에 의한 군사 쿠데타적 사건」이라는 김영삼정부의 해석은 그 표현상의 미묘함 때문에 새로운 논쟁으로 이어질 소지를 남기고 있다. 쿠데타면 쿠데타이고 아니면 아닌 것이지 쿠데타적 사건」이 무엇이냐는 의문이 당연히 나올만하다.
이러한 표현은 현실을 감안한 고육지책적 해석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현단계로서는 이러한 해석이상의 개념규정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만약 12·12사태를 쿠데타였다고 분명히 규정한다면 그 뒤의 정치적 전개과정은 하나같이 불법적인 것이 되며 5공은 물론 6공까지도 그 법적 타당성이 부인될 것이다. 또 그렇게 되면 12·12사태의 주역들과 5,6공의 책임자들을 법적으로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복잡한 문제도 일어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12·12사태가 쿠데타가 아니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또다른 성격의 복잡다단한 정치적·법적 파장을 일으킬 것이다. 따라서 2중적인 해석이 가능한 「쿠데타적 사건」이라는 표현으로 5,6공과의 차별성을 부각시키면서도 이로 인해 더이상의 정치적 파장이 이는 것만은 차단하려한 청와대의 수습책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으로 12·12사태에 대한 진상규명 노력자체가 마침표를 찍을 일은 아니라고 본다. 12·12사태는 우리 정치사에 있어서 전환점을 이루는 중대한 사건이었다. 그런데 이제까지 12·12사태에 대한 공식적인 진상규명작업은 이루어진 일이 없다. 5공청문회때 5·17,5·18을 거론하면서 12·12에 대해서도 부분적인 언급과 증언들이 있었으나 그것을 12·12에 대한 공식적인 논란으로는 볼 수 없다.
물론 12·12의 내용은 그동안 신문·잡지등을 통해 소상히 밝혀져 대부분의 국민이 그를 알고 있다. 그러나 이는 공식적인 진상규명과는 구별되어야할 성격의 것이다. 개인차원·민간차원에서 아무리 진상규명이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그것이 공식적인 조사의 결과가 아닌한 그 역사적 가치는 반감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시기적으로 보아서도 지금이야말로 공식적인 진상규명이 가능한 때다. 5공청문회때만 해도 바로 12·12사태 주역의 한 사람이 권력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유로운 증언과 객관적인 조사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상황적 제약이 거의 없어진만큼 가해자와 피해자간 논쟁의 차원을 넘는 객관적인 실사가 가능한 여건이 마련된 것이다.
물론 우리가 12·12사태의 진상을 규명해 그 법률적인 처리를 하자는 건 아니다. 다만 올바른 역사의 기록을 위해선 그에 대한 공식적인 조명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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