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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새바람 부패 척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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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독일 베를린에서는 지난 6일 각국의 부정 부패를 고발하기 위한「국제부정방지위원회」(Transparency International·TI)가 창설됐다.
독일정부가 주축이 돼 80개국 정부 관리들과 기업인들이 공동참여,「국제사면위원회」를 모델로 창설된 TI는『정치와 경제의 검은 고리가 수백만명을 빈곤으로 몰아넣고 있다』고 선포하고, 각국 정경 유착 실태와 검은 돈의 뒷거래 등을 전세계에 고발할 예정이다.
사정 바람과 부정 부패 척결 운동이 지구촌을 휩쓸고 있다.
제3세계는 물론 서방 선진국들도 과거 민주대 공산 진영의 이데올로기 대결 구도속에「안보」라는 미명으로 썩은 관행을 묵인해 왔다. 그러나 외부의 적이 사라진 탈냉전 시대를 맞아 내부의 적인 부패 사슬에 눈을 돌리게 되면서 관행에 된서리를 가하고 있는 것이다.

<냉전시대 썩은 관행>
「마니 풀리테」(깨끗한 손)란 개혁운동을 통해 45년 동안 곯아온 정치권의 환부를 도려내고 있는 이탈리아와 대대적인 정치자금 개혁안을 마련한 미국 등 서방에서도, 정정 불안과 부정에 찌들어온 중남미에도 개혁과 사정의 파고가 거세게 몰아치고 있다.「경제대국-정치후진국」이란 오명을 들어온 일본이 국회의원 재산 공개법을 도입하는 등 아시아에서도 개혁의 물결이 꿈틀대고 있다.
이탈리아의 마니 풀리테는 이미 국회의원 1백50여명, 공무원 8백여명, 기업인 1천5백여명 등을 부패·횡령·뇌물수수·독직 등의 혐의로 구속 또는 입건하는 사상 최대의 사정 태풍을 일으키고 있다.
33번의 장관직과 총리직을 일곱차례나 역임하며 이탈리아 정계를 주물러온 줄리오 안드레오티 종신 상원의원에 대해 사법당국이 마피아연루 혐의로 전격 수사에 착수한 것은 개혁에 성역이 없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공직자와 정치인에게 청교도적 순결주의를 요구하는 독일과 프랑스에서도 잇따른 스캔들이 터지자 윤리문제를 더 이상 정치인 개인 양식에 맡길 수 없다는 분위기가 팽배해지고 있다.

<독선 형법 개정 추진>
독일에선 아직 정치인을 처벌할 법규가 없다. 53년 형법 개정 때 필요성이 없다는 판단에 따라 연방의원에 대한 형사처벌 조항을 삭제했다. 그만큼 투명하다는 반증인 셈이다. 그러나 최근 정치인들의 비리가 잇따르자 법제정 여론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3일과 6일 비외른 엥홀름 제1야당 사민당총재와 귄터 크라우제 교통장관이 사임했다. 전자는 한 지방의회에서 위증했고 후자는 자신의 이사비용 6천4백마르크(약 3백20만원)를 공금에서 지출했다는「별 것 아닌」이유였다.
1월초에는 위르겐 묄레만 경제장관이 친척의 회사제품을 업체에 권유한 것이 드러나 사퇴했고, 막스 슈트라이블 바이에른 주지사도 친구의 도움으로 해외여행을 한 사실이 밝혀져 곤욕을 치르고 있다.
프랑스의 피에르 베레고부와 전총리의 총격 자살은 정치인의 비리는 한치도 용납될 수 없다는 국민적 의식에서 출발한다고 볼 수 있다.
자살동기에 대한 갖가지 추측 속에서도 그가 아파트 구입비로 빌려쓴 금전거래 스캔들이 결국 그의 도덕성에 대한 압박으로 이어져 죽음까지 이르렀다는 점에서 프랑스 정치 수준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아메리카대륙에도 사정한파는 몰아치고 있다. 미국은 그동안 갖가지 이권에 개입하며 물의를 빚어왔던 로비이스트들에 대한 정비에 나섰고, 중남미는 사정바람이 민주화 바람에 실려 전·현직 대통령 및 군부 등 부패구조의 핵심으로 파고들고 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은 의원을 상대로 한 이익 단체 및 로비이스트들의 정치헌금 제공을 금지하는 것을 골자로 한 정치자금법 개혁안을 추진키로 하고 미 정계의 자정 노력을 본격화했다.
미상원도 로비이스트의 등록의무, 로비활동 감독관청의 신설, 연간 50달러이상의 선물 및 향응을 제공받을 때는 공개토록 해 비리의 사슬을 차단하겠다는 의지를 강화했다.
베네수엘라의 카를로스 안드레스 페레스대통령은 1천7백만달러의 공금을 유용한 혐의로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최초로 대법원에 기소될 위험에 처해있다.
볼리비아 대법원은 지난달말 4년째 도피중인 루이스 가르시아 메사 전대통령에 대한 궐석재판을 열고 살인·절도·사기 등 네가지 혐의를 적용해 징역30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지난 80년 유혈쿠데타로 집권한 메사 전대통령은 직접 코카인을 밀매할 정도로 온갖 비리에 연루됐을 뿐 아니라 성직자·야당지도자 등 지식인을 대거 투옥, 최소한 50명을 옥사시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브라질의 대법원도 지난달 페르난도 콜로르 데 멜로 전대통령(44)을 부패혐의로 재판에 회부키로 결정했다. 콜로르대통령은 89년 수의계약 등 특혜를 통해 정치자금 6백50만달러를 축재한 혐의를 받아오다 지난해 12월 사임했다. 콜로르는 면책특권을 박탈당하고 해외 출국이 금지된 상태.
이에 비해 아시아 각국은 한국만을 제외하고는 아직 용트림만 해대는 형상이다.
89년 리크루트사 미공개주식불법양도 사건, 91, 92년 교와, 도쿄 사가와규빈 뇌물 수수 사건 등 정치와 돈의 검은 유착은 일본 정치의 막후를 대변해 왔다. 정치인들이 각종 이권에 개입해 돈을 챙기는 관행은 공공연한비밀이었다.
게다가 아무리 큰 사건이 터져도「꼬붕」이 죄를 몽땅 뒤집어쓰거나 또는 자살해 버려 진실은 다시 파묻힌 채「오야붕」은 살아남는 전통이 여전히 받들어지고 있다.

<대만은 청광법 입안>
그러던 일본 정계에도 조금씩 변화의 물결이 흘러들고 있다. 일본국회는 올 1월부터 의원재산공개법을 시행, 자신의 자산과 관련 회사의 지분 등을 등록토록 했다. 사가와규빈 사건에서 20만엔의 약식기소로 법망을 빠져나간 거물 정치인 가네마루 신 전 자민당부총재도 탈세혐의로 전격 기소되는 지경에 왔다.
집권 자민당은 이어 올 가을 총선에 대비, 부패방지법도 제정할 움직임을 보이는 등 개혁의 파고를 차츰 높이고 있다.
대만도 고위공직자를 비롯한 모든 공무원들의 재산 공개를 의무화하는「청광법」을 입안중이다. 2만여공무원의 직위를 이용한 축재를 방지키 위해 본인과 가족의 재산을 공개하는 것을 골자로 한 법률안으로 현재 입법원(의회)의 토의가 끝나는대로 시행에 들어갈 예정이다.<고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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