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대법 “흑백 균형 맞추기 위한 학생 배정은 위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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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호 13면

천경훈 변호사 김&장 법률사무소

196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 남부에는 백인이 다니는 학교와 흑인이 다니는 학교가 나뉘어 있었다. 학교뿐 아니라 식당·버스·호텔 등도 마찬가지였다. 외국에서 온 흑인 외교사절이 백인용 호텔 출입을 거부당한 일이 소련에 의해 반미 선전거리로 이용되기도 했다. 이런 흑백분리 정책은 ‘분리하되 평등’이라는 1896년 플레시 판결에 의해 법적으로도 뒷받침됐다.

하지만 1954년 미 연방대법원은 유명한 브라운 판결을 통해 흑백분리 그 자체가 헌법상 평등조항에 위반된다고 선언했다. 당시 캔자스의 토피카 시(市)는 교과과정·학교시설은 같고, 교육장소만 흑인 학생과 백인 학생을 분리해 운영했다. 그런데 대법원은 아무리 다른 요소에 차이가 없더라도 흑인 학교와 백인 학교를 분리하는 것 자체가 인종차별이라고 판단했다.

이 판결은 미국 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왔다. 일부 주에서는 백인들이 흑인 학생의 등교를 저지했고, 소요가 발생해 군대가 출동하기까지 했다.

이제 더 이상 제도적으로 흑인 학교와 백인 학교가 구분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여전히 남아 있다. 백인 위주의 중산층이 사는 동네와 흑인이 주로 사는 빈곤한 동네가 명확히 나뉘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공립학교들도 흑인 위주의 학교와 백인 위주의 학교로 나뉜다.

이런 문제를 시정하기 위해 일부 지역에서는 인위적으로 흑백 학생을 섞어 인종의 다양성을 추구한다.

예컨대 학생들의 신청에 따라 공립학교를 배정하되, 특정학교에 신청이 몰리는 경우에는 인종을 감안해 선발하는 것이다. 백인이 많은 학교는 흑인 학생에게, 흑인이 많은 학교에는 백인 학생에게 우선권을 주는 방식이다. 지역에 따른 빈부 격차 때문에 사실상 흑백분리의 결과가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였다. 학생 집단이 인종적으로 다양해야 올바른 교육을 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미 연방대법원은 지난달 5대4로 위헌 판결을 내렸다. 보수적인 대법관은 다수의견인 위헌 쪽에, 진보적인 대법관은 소수의견인 합헌 쪽에 섰다.

위헌이라고 본 대법관들은 인종을 기초로 학생 선발을 좌우하는 것 자체가 인종차별이라는 입장이다. 헌법은 피부색에 대해 ‘색맹’이어야 하고, 어떤 형태로는 피부색을 기초로 대우가 달라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반면 진보적인 대법관들은 지역 간 빈부 격차 때문에 사실상 흑백분리가 이루어지는 것은 잘못된 현상이므로 이를 시정하기 위해 흑백 학생을 합리적인 수준으로 섞는 것은 인종차별을 해소한다고 주장했다.
169쪽에 달하는 판결문을 통해 다수의견과 소수의견 모두 자신들이 1954년 브라운 판결의 진정한 계승자임을 자처했다. 어떤 의견이 진실에 가까운지는 세월이 흘러야 알 수 있을 것이다. ‘분리하되 평등’이라는 입장을 옹호한 플레시 판결이 60년을 못 가 ‘분리 자체가 불평등’이란 브라운 판결로 번복되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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