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 남쪽 바다, 통영 ‘다찌집’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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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호 27면

“음, 멍게가 먹고 싶네요. 멍게 한 알 까서 초장도 없이 입에 넣으면 바닷물의 짭짤한 맛과 싸한 향이 입 안에 그득한 게 그만이죠.”
“너 또 군대 이야기냐.”
우렁쉥이라고도 하는 멍게는 여름철에 수확한다. 경남 통영 앞바다엔 멍게 양식장이 꽤 많은데, 멍게 수확이 한창일 때는 해안초소에 근무하는 군인에게도 콩고물이 떨어졌다. 바닷물에서 갓 올라온 멍게 맛을 결코 잊을 수 없다.
“겨울에는 굴을 그 자리에서 까먹는데 그 맛이야말로 설명할 수 없죠. 게다가 싱싱한 멸치로 말아 낸 시원한 물회를 남쪽 바닷가가 아니고 어디에서 먹어볼 수 있겠어요.”
“그런데 넌 참 이상하다. 그곳 생활이 그렇게 좋았냐?”
“저도 바다라면 지긋지긋하죠. 하지만 어느 날 문득 가고 싶은 것이에요. 아마도 도회지에서 나고 자라서 그런지 그곳이 고향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태경,정한진의 음식수다

남쪽 바다를 그리워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봄이면 나지막한 능선에 일군 황토밭에서 아지랑이가 꽃을 피우는 아기자기한 섬들이 뭍 바로 건너에 흩뿌려져 있기 때문이다. 마을 공판장에서 일하는 수수한 처녀의 나긋한 사투리에 설레었기 때문이다. 남쪽 끝 바닷가 마을에서 같은 날 밤 집집마다 울리는 곡소리의 사연을 알기 때문이다. 한 마을 사람들이 같은 배를 타고 나가 돌아오지 않았으니까.

“휴가 나오던 날 휴가병들끼리 술 한잔 하자고 해서 들른 곳이 선창가 선술집이었죠. 가게 앞 연탄 화덕에서는 굵은 소금을 뿌린 ‘뽈락(볼락의 사투리)’ 굽는 냄새가 진동하니 그 고소한 냄새에 이끌릴 수밖에요. 쥐치 세꼬시·멸치회·시원한 흰 살 생선미역국과 같은, 그곳에서 아주 흔하고 값싼 해산물의 싱싱함에 술 취하는 줄도 몰랐어요.”
“통영하면 ‘충무 깁밥’만 떠올리는데, 어느 지역보다도 철따라 온갖 해산물이 풍부한 곳이지. 특별히 해산물을 삭히거나 요리해서 감칠맛을 내기보다는 신선한 채 그대로 먹을 수 있게 내는 것이 통영 음식이잖아. 그래서 통영에는 해산물로 안주 한 상을 깔아주는 ‘다찌집’이 유명하지. 일정한 술값에 안주가 포함되어 나오는데 실비집이라고도 해.”
“그전에 제가 간 곳도 ‘다찌집’이었을지도 모르죠. 그런데 오랜만에 갔더니 이전의 선창가 술집은 찾아보기 어렵고 깨끗한 ‘다찌집’ 또는 실비집 간판이 늘어서 있더군요. 기본상에 올려지는 해산물은 너무나 다양해졌지만요.”
“‘다찌’라는 말이 ‘다치노미(立ち飮み)’, 즉 ‘서서 마시다’라는 뜻의 일본어에서 나왔듯이, 간단하게 술 마시는 선술집이라고 볼 수 있잖아. 고깃배가 들어오면 어부들이 해산물 몇 가지나 막회를 놓고서 술 한잔에 삶의 고단함을 풀던 선술집이 지금의 ‘다찌집’의 이전 모습이라고 볼 수 있겠지.”

“예전 생각이 나서 아쉽기는 하지만 다양하고 싱싱한 해산물에 술 한잔 하기에는 ‘다찌집’이 좋더라고요.”
“그러면 이번 여름에 통영 ‘다찌집’에 들러볼까. 다음날 아침에는 맑은 졸복국으로 시원하게 해장하고.”
“좋지요. 그러지 않아도 그곳에 가고 싶은데.”
“내려간 김에 진주 실비집에 들르고, 마산에서는 통술집에도 들르고.”
“선배님, 그럼 올라오다 전주에서도 한 상 벌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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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것 먹기를 낙으로 삼는 대학 미학과 선후배 김태경(이론과실천 대표)ㆍ정한진(요리사)씨가 미학(美學) 대신 미식(美食)을 탐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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