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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가 3대를 못 가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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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기업들 개방 압력과 가족 불화로 경영권 승계에 발목 잡혀

뉴스위크아시아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의 피폐한 상황을 딛고 일어나 오늘날 세계 경제 성장의 주요 견인차가 됐다. 그 전환을 이끌어내고 아시아 경제 붐을 일으킨 사람들이 바로 가족 경영 기업을 일으킨 거부들이다. 이 재벌 1세들은 요즘 주로 대규모 인수합병 거래나 개인 재산의 치솟는 가치로 자주 언론에 오르내린다. 하지만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그들의 나이가 너무 들었다는 사실이다.

활동이 제일 왕성한 재벌 1세는 거의 80세다. 홍콩에서 쌍벽을 이루는 부동산 거물로 재산이 각각 230억 달러, 170억 달러인 리카싱(李嘉誠)과 리샤우키(李兆基)가 좋은 예다. 말레이시아 최고의 부호 로버트 콕은 올해 83세다. 마카오의 도박업계 거물 스탠리 호(何鴻桑)는 85세다.

대만 플라스틱 업계의 제왕 왕융칭(王永慶)은 내년 1월이면 91세로 최근 포브스지에서 아시아 거부 중 최연장자로 소개됐다. 프랑스의 경영대학원 인시아드(INSEAD, 싱가포르에도 캠퍼스가 있다) 산하 웬덜 국제 가족기업 센터 소장인 랜덜 칼록은 “2차 대전 종전 당시 10대였던 기업가들이 지금은 75~80세라서 세대 교체가 임박했다”고 말했다.

재발들의 세대교체에 따라 그들이 일으킨 무역, 부동산, 제조업 제국도 변화를 맞을 전망이다. 아시아는 다른 어느 곳보다 가족 기업 모델이 지배하는 지역이다. 홍콩에서 발행되는 금융전문 월간지 파이낸스 아시아는 2004년 기사에서 아시아의 100대 상장회사 중 40개가 가족 지배 기업이라고 추정했다. 국가가 지배하는 기업이 38개였고, 서방 세계의 표준인 일반 주주 지배 회사는 22개에 불과했다.

물론 이런 경향은 독특한 유교 문화와 식민지 역사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아시아라고 여타 세계와 크게 다르지는 않다. 다만 경제 발전 시발점이 늦었을 뿐이다. 앤드루 카네기와 존 D 록펠러 같은 미국 기업가들이 세운 19세기 기업 왕국들은 20세기 들어 대부분 해체됐다. 아시아의 전후 재벌 다수도 21세기에는 같은 운명을 맞으리라 예상된다.

중국 격언에 ‘부불삼세(富不三世)’라는 말이 있다. “부자가 3대를 못 간다”는 뜻이다. 앞으로도 그럴까? 시카고 켈로그 경영대학원의 가족 기업 전문가 존 워드는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아주 높다”고 진단했다. 가족 경영을 방해하는 요인들 때문이다.

내부적으로는 경영권 승계에 따르는 알력, 족벌주의, 형제 간 경영권 다툼, 후계자가 다수일 경우 나타나는 지배력 희석 등이 대표적이다. 외부적으로는 자국 시장의 개방, 세계 금융 시장의 영향력 증대, 소액 주주들의 경영 개선과 투명성 제고 요구가 압박을 가한다.

그런 압력은 1997~98년 아시아 금융 위기 이래 크게 증가했다. 게다가 창업자가 물러나면 그런 압력을 막아내기가 더더욱 힘들어진다. 한국에선 그런 과정이 이미 많이 진척됐다. 삼성·현대·LG·SK 등 한국의 재벌기업은 창업자가 세상을 떠난 이래 많은 혼란을 겪었다. 더욱 엄격해진 독점 금지법, 외국 기업들의 국내 진출, 높은 상속세, 가족 내부의 불화 때문이었다.

그에 따라 3세 후계자가 회사를 떠맡을 시기가 됐을 때 경영권을 장악할 능력이 있을지 의문이 대두된다. 켈로그 경영대학원의 워드는 이렇게 말했다. “어디서나 가족 기업 역사의 가장 취약한 시기는 2세의 형제 세대가 경영할 때다. 형제자매가 경영권을 공동 소유하거나 회사를 공동 경영하는 시기를 말한다.”

아시아에선 그런 양상이 실제로 나타났다. 2세의 형제 공동경영 시대까지 성공적인 승계가 이뤄진 경우도 없지 않지만, 그렇지 않은 사례도 많다. 예를 들어 한국의 경우 현대 그룹은 2002년 해체됐다. 창업자 정주영 회장의 경영권을 물려받은 아들 3형제의 반목이 계기였다.

인도에선 최대 제조업체 릴라이언스 그룹이 2004년 둘로 쪼개졌다. 창업자 디루바이 암바니의 뒤를 이은 아들들이 경영 방식을 두고 견해를 달리했기 때문이다. 분석가들은 릴라이언스 그룹의 분할이 수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홍콩에선 니나 왕(王如心)이 4월 사망하면서 그녀의 재산(42억 달러로 아시아 여성 중 최고 부자였다)이 전속 풍수 전문가에게 넘어갔다. 그러나 그 유언에 이의가 제기됐고 전문가들은 법정 투쟁 탓에 왕의 비상장 기업 차이나켐의 운명이 수년 동안 공중에 뜨게 되리라 예상했다.

세계적인 경쟁도 아시아의 재벌 2세 다수에게 불리하게 돌아갔다. 홍콩 거부 리카싱의 둘째아들 리처드 리는 2000년 그가 맡은 회사 PCCW가 케이블 앤 와이어리스 홍콩을 영국 모회사로부터 285억 달러에 인수하면서 이동통신업계의 신동으로 각광받았다. 그로부터 3년 뒤 닷컴 거품이 꺼지자 PCCW는 시가총액의 96%를 잃었다. 리처드는 아시아 최대의 자산 파괴자로 조롱 받게 됐다.

말레이시아에선 도박기업 젠팅 그룹 창업자 림고통(林梧桐·89)의 상속자 림곡타이가 1993년 세운 스타크루즈로 아직도 고전을 면치 못한다. 세계 제3위의 유람선 업체인 스타크루즈는 지난해 아시아 관광 시장의 호황에도 불구하고 1억5600만 달러의 손실을 기록했다. 경쟁업체인 카니발은 2002년 이래 주가가 두 배로 올랐지만 스타크루즈의 주가는 제자리걸음이다.

가족 재벌기업은 한결같이 두 가지 자본주의 모델을 거쳐왔다. 1세 경영자는 폐쇄되고 고립된 경제 체제에서 고유한 틈새 시장을 개척했다. 자신이 모든 일을 직접 지휘했기 때문에 시장 추세를 무시하고 극단적인 장기 투자를 강행하기가 쉬웠고, 필요한 순간엔 대담했다. 현재 서방에서도 기업 공개에 따르는 여러 제한 요인을 피하고자 주식을 상장하지 않는 기업이 늘어나는 추세인데 그런 기업의 관행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재벌 1세가 아들들을 세계 유수의 대학에 보내 경영학 석사학위를 따게 했다. 그 학교에서 아들들은 최고의 경영 방식, 주주 이익 극대화, 뉴욕 증권거래소의 원칙 등을 배웠다. 따라서 경영에 임하는 자세가 1세와 판이하다.

고급 교육은 가족 경영 재벌기업의 존재 이유가 빛을 잃게 만든다. 단기 수익 극대화에 반기를 들었던 재벌기업의 자유가 사라진다는 얘기다. “모두가 하버드 경영대학원과 세계적 컨설팅 대기업 매킨지의 원칙을 따르면 누구도 상대적인 경쟁 우위를 점하지 못한다”고 워드는 말했다.

선진국에서 교육을 받았으나 재벌 2세는 아버지의 정치적 수완이나 정부 내 연줄 만드는 기술까지는 완전히 배우지 못했다. 조 스터드웰은 “경쟁은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기업을 만드는데 있지 않다.

오히려 자국 내의 이권을 끌어 모으고 담합에 용이한 기업 연합을 형성하는 일이다”고 말했다. 스터드웰은 논란을 일으키는 새 책에서 아시아의 재벌들이 동남아를 중남미와 같이 상대적으로 침체된 경제로 몰아 간다고 주장했다. “아버지는 정치인과 함께 살았고 그들과 함께 학교에 다녔다. 하버드에 가면 그런 경험을 얻지 못한다.”

재벌 2세 다수는 아주 힘든 선택을 해야 한다. 내수 사업 위주인 대기업의 관리자 역할을 맡느냐 아니면 훨씬 위험하지만 세계 무대에 진출해 회사를 키우느냐 둘 중 하나다. 말레이시아의 부동산 개벌업체 YTL은 자국의 경계를 뛰어넘어 미래를 개척하는 대표적인 가족 기업이다.

창업자 여티옹레이(78)는 자신의 이름을 딴 건설회사 YTL을 1955년 세웠다. 연줄을 이용해 영국 식민통치 정부와 선이 닿아 첫 사업을 따냈다. 탄약고 두 개를 짓는 일이었다. 여는 “말레이시아 달러로 5000달러를 벌었다”며 지금도 당시의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속으로 ‘야, 건설업자가 되니 너무 좋구나’라고 생각했다.”

여는 사업체를 쿠알라룸푸르로 옮기고 큰 물에서 대형 사업을 따내려고 외국 업체와 경쟁하기 시작했다. 현재 여 일가의 순 자산가치는 17억 달러로 추산된다(호텔, IT, 시멘트, 에너지 업체에 지분이 있으며 말레이시아에서 여섯 번째의 부호 가문이다). YTL은 말레이시아와 일본의 주식시장에 상장했다.

현재 회사를 경영하는 장남 프랜시스(52)는 “경영을 맡은 첫날부터 가장 어려운 일에 바로 뛰어들어 모든 일을 아주 빨리 배워야 한다. 계약으로 돈을 버는 방법 말이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영국, 호주, 인도네시아의 에너지 기업들을 인수해 회사의 국제화를 추진 중이다. “처음부터 국제화에 매진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대개 재벌들은 가족의 경영권 유지를 1차 목표로 삼는다. 하지만 그 목표를 달성하는 전략은 갖가지다. 대만의 플라스틱 업계 선구자로 대만 최대의 기업인 포모사 그룹을 세운 왕융칭의 경영권 승계 전략이 특히 흥미롭다. 왕의 제국 규모는 대만의 주요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기업들의 전체 시가총액 중 10%를 차지한다.

약 50개 산하 기업으로 이뤄진 포모사 그룹의 최대 기업 4개를 합친 시가총액은 2006년 말 기준으로 380억 달러였다. 강단 있는 공사장 감독으로 이름을 떨쳤던 왕은 아들 윈스턴에게 경영권을 물려줄 생각이었다. 그러나 윈스턴은 1995년 타이베이의 여대생과 벌인 정사 추문으로 그룹에서 쫓겨났다.

왕은 공식적으로 지난해 은퇴했지만 여전히 사업에 깊이 간여하며 최근 계열사들의 교차 소유를 통해 가족의 경영권을 강화했다. 각 계열사가 서로간의 보유 지분을 높여 왕 일가의 전체 의결권을 강화했다.

싱가포르 국립대의 가족 기업 전문가 이시티아크 P 마무드는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가족의 경영권을 유지하고 싶어 한다. 남의 돈을 이용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런 방법을 쓰면 5∼10% 정도의 지분만 가져도 그룹 전체를 좌지우지한다.”

그러나 기업 현대화의 측면에서 보면 그런 방법은 후진성이 농후하다. 한국에서 계열사의 상호 주식 보유는 1990년대 부채가 많은 대기업들의 몰락을 초래했다. 일본의 경우 반드시 계열사에서 부품을 공급받는 방식이 너무도 엄격히 지켜져 결국 국가 전체가 경쟁력을 잃게 됐고, 자동차 회사 닛산 같은 기업을 몰락의 길로 내몰았다(르노가 1999년 파산 직전의 닛산을 구출했다).

그러나 포모사 그룹은 부채가 많지도 않고, 계열사에서만 부품을 공급받지도 않는다. 따라서 대다수 분석가는 그룹 차원의 경영 목표가 흐려지는 게 포모사의 최대 위험이라고 본다. 아카데미아 시니카의 분석가 추완원은 이렇게 말했다. “현재는 배후에 실권자가 있다. 하지만 창업자가 사라지면 개별 회사들은 괜찮을지 모르지만 그룹 전체의 경영 노선은 흔들리게 된다.”

재벌기업 창업자가 무대를 떠나면서 소유 구조가 얼마나 빨리 바뀌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는 한국이다. 지난 10년간 한국의 재벌 기업들은 회장 일가의 경영권을 조금씩 잃어왔다. 최대기업 삼성의 경우 외국인 투자자들이 주식의 상당 지분을 소유하며, 2세 경영자 이건희 회장은 상속세 관련법 위반 의혹으로 곤경에 처했다(이 회장은 삼성전자를 아시아에서 가장 자산 가치가 높은 전자회사로 이끌었다).

결과가 삼성에 유리한 쪽으로 나온다고 해도 금융 간판기업인 삼성생명이 기업을 공개하면 이 회장의 경영권 장악력은 약화될지 모른다. 단일 법인이 금융과 비금융 양쪽 부문에서 상장 기업들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한 금산분리 원칙 때문이다. 현대의 경우도 비슷하다. 현대는 97~98 아시아 금융 위기 전까지 한국의 최대 재벌기업이었다. 그러다가 2001년 창업자 정주영 회장이 작고한 뒤 3형제의 불화로 그룹이 해체됐다.

이씨 일가와 정씨 일가 둘 다 앞으로 언젠가 3세 경영인을 내세울 준비가 돼 있다. 그러나 독점금지 규정의 강화, 투명성 제고, 민주화로 정실 자본주의 시대가 끝났기 때문에 재벌 3세들의 위치는 전혀 확고하지 않다.

장하성 고려대 경영대학장은 이렇게 말했다. “한국에서는 재벌 3세까지는 문화적으로 받아들여질 여지가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경영인의 전문 지식과 기술은 입증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경영권을 장악할 기회는 영영 오지 않는다.”

사실 유럽과 미국도 그런 과정을 거쳤다. 기업을 소유한 가족은 어느 정도 세월이 흐르면 경영권을 양도했다. 포드나 제너럴일렉트릭 같은 가족 기업이 20세기 들어 최대 다국적 기업으로 부상하게 된 과정이 바로 그것이다.

미국의 거부 워런 버핏은 기업의 경영권 세습을 이렇게 비유했다. “2000년 올림픽 수영 금메달리스트의 아들을 2020년 올림픽 선수로 선발하는 일과 마찬가지다.” 가망이 없다는 얘기다. 그 결과가 아시아에선 다르리라고 생각할 이유도 전혀 없다.

With JONATHAN KENT in Kuala Lumpur, JONATHAN ADAMS and JACKIE LIN in Taipei, B. J. LEE in Seoul and SONIA KOLESNIKOV-JESSOP in Singapore

GEORGE WEHRFRITZ 기자

<뉴스위크 7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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