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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태의 『4?19앓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잔인한 달」4월에 33년전의 4·19를 생각한다. 4·19를 생각함이란 4·19를 기억함에 해당되는 것. 기억이란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4·19를 체험한 자만이 할 수 있는 특권이자 특징적인 정신현상, 곧 세계를 보는 시선에 다름아니다.
그렇다면 그 4·19세대의 세계인식이란 어떤 것일까. 이런 물음에 대해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작가 김국태씨 오른편에 나설 자는 없지 않을까. 「기성세대 이분법」(1991)에 이어 중편「4·19앓이」(『문학사상』1993 3,4월)가 그러한 사례를 전형적으로 보여주고 있어 인상적이다.
과연 어떤 것이 4·19앓이인가. 광주앓이와 어떤 점에서 그것은 구별되는 것일까. 이런 물음에는 작가 김국태의 해답부터 보아야 될 것이다.
이 해답이 소중한데 4·19세대가 현재 이 나라의 중추적 몫을 맡고 있는 기성 세력권이라는 사실에 관련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국회의원 최모다. 그는 지금 정년퇴직한 대학은사인 모씨를 찾아가고 있다.
손에는 은사가 좋아하는 생선회와 술을 들고 최와 그 은사는 그럴수 없이 다정하게 사제의 정을 나누고 있다. 이런 행위가 미담중의 미담처럼 그려진다. 어째서 그러한가. 금배지를 단 최란 누구인가. 4·19직전 그는 신문사 사회부장이었다. 대학교수 데모 취재기사를 자기명의로 그가 직접 썼다. 그 데모대 속엔 은사 모씨가 끼어 있었던 것. 「시민이여 궐기하라」는 내용의 기사였다. 편집국장이 최모의 이름으로 이를 변조, 아직 우리 사회는 진짜 민주주의가 불가능하고 기껏해야 「한국적 민주주의」라야 한다고. 이에 항의한 최는 좌천되었고, 5·16이 터졌다. 그 주역인 모중령이 최에게 은밀히 접근해 왔다. 당신이 쓴 「한국적 민주주의」논조가 우리 맘에 쏙 든다고. 협력할 수 없겠느냐고. 이 결정적 대목에서 최는 넙죽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마침내 편집국장이 되고, 장관이 되고, 국회의원이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만일 이러한 것이 4·19세대라면 그야말로 쓸개 빠진 세대가 아닐 것인가.
자기 주장과는 정반대인 편집국장 주장을 흡사 자기주장인 듯이 찬탈하고 그때그때 임기응변으로 헤엄쳐 나가기가 4·19세대의 특징이 아니었던가. 그런 너절한 제자가 사다 주는 생선조각을 넙죽 받아 먹는 은사라는 작자 역시 너절하기는 마찬가지.
작가 김씨는 이 점에서 정직하다. 꾸미지도 않았고 더하거나 빼지도 않았다. 있는 그대로를 그렸을 따름이다. 유신세대란 어떠한가. 광주세대는 어떠한가.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이념부재의 4·19세대와는 분명 다르지 않겠는가. 이 점에서 4·19세대란 낭만주의 세대다.
4·19세대란 이래도 저래도 좋고 다만 열정만이 소중한「한국적 민주주의」의 체현자들로 작가 김씨는 규정했다.
김윤식<문학평론가·서울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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