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연대보증' 내달 없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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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연좌제'로 불리는 연대보증인제가 은행권에서 줄줄이 퇴출되고 있다. 기업은행(은행장 강권석)은 다음달부터 연대보증인 제도를 폐지하고 대신 돈을 빌리는 사람의 신용도에 따라서만 대출해 주기로 했다고 26일 밝혔다.

은행권에서 연대보증인 제도를 폐지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기업은행의 전체 신용대출은 약 34만 건으로 이 중 연대보증인을 세운 신용대출은 6만 건 정도다. 기업은행은 연대보증 폐지를 우선 신규 대출분부터 적용하되 기존 연대보증 신용대출도 대출 고객의 신용도에 따라 보증을 폐지해 나갈 방침이다. 다만 일반 신용대출이 아닌 기업주.공동 경영자에 대한 대출이나 소호 창업대출은 기존 연대보증제도를 유지하기로 했다.

기업은행 여신기획부 권용대 팀장은 "연대보증은 대출을 떼일까 우려한 은행이 담보 대신 받은 것"이라며 "지금은 은행이 개인신용평가시스템(CSS)을 정교하게 구축해 신용 능력에 맞춰 돈을 빌려주는 만큼 연대보증이 필요없어졌다"고 말했다. 권 팀장은 "연대보증 폐지가 정착되면 앞으로는 빚보증을 잘못 썼다가 패가망신하는 일이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연대보증인 한 명이 보증할 수 있는 신용대출 한도는 건당 1000만원까지다. 이에 따라 2000만원의 신용대출을 받으려면 보증인 두 명을 구해야 했다. 그동안 은행들은 개인의 직업, 연봉, 근속연수, 재산상태, 기존 대출 연체 여부를 통해 개인의 신용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CSS를 개선해 연대보증 신용대출을 지속적으로 줄여왔다.

기업은행에 이어 다른 은행들도 연대보증 폐지 수순을 밟고 있다. 우리은행은 연대보증을 통한 신용 대출을 최소한으로 운영하고 있어 사실상 폐지 단계에 있다. 우리은행 김기린 부부장은 "연대보증인 제도는 과거 은행이 고객 신용을 제대로 평가할 능력이 없을 때 활용했던 낙후된 제도"라며 "매년 연대보증을 크게 줄여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외환은행도 대부분의 대출을 무보증으로 하고 있다. 대기업 직장인이나 공무원, 전문직 종사자와 같이 신용등급이 양호한 고객에 대해서는 이미 연대보증인제를 폐지했다. 외환은행은 그러나 완전 폐지보다는 고객 필요에 따라 연대보증제를 일부 유지할 방침이다. 외환은행 신용기획부 김종렬 차장은 "일부 고객의 경우 연대보증인을 세워서라도 좀 더 많은 대출을 받으려는 경우가 있다"며 "연대보증인제를 폐지하면 이들에게 역차별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보완 차원에서 명맥을 유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창규 기자

◆ 연대보증인제도=은행이 기업이나 가계에 신용대출을 해 줄 때 채무 상환을 보장받기 위해 일정 자격요건이 되는 제3자를 보증인으로 세우도록 한 제도. 대부분 친지나 직장 동료를 보증인으로 세우는 데다 채무에 대해 무한책임을 지기 때문에 '경제적 연좌제'라고 불린다. 외환위기 때는 연대보증으로 파산에까지 이르는 경우가 많아져 2000년에는 연대보증을 통한 신용대출 한도를 기업은 건당 2000만원, 개인은 1000만원으로 제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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