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있는아침] ‘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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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집’ -맹문재(1963- )

자정인데 작은방에 있는 아내가 급히 부른다

무슨 일인가 싶어 얼른 달려갔는데

거미를 잡아달라는 것이었다

거미는 목욕탕 굴뚝같이 높은 방구석에

제법 집다운 집을 지어놓고 있었다

나는 거미를 잡을 수 없다고 했다

뜻밖의 대답에 놀란 아내는

왜 잡을 수 없느냐고 항변했다

토끼풀꽃 같은 집을 지은 거미에게 원망 듣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거미한테 원망 듣는 것은 무섭고 마누라한테 원망 듣는 것은 안 무섭느냐고 아내가 따졌다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원망을 들을 수밖에 없는 나는

아내의 방을 나왔다

자정이 넘어 잡을 수가 없네요


아내가 거미를 잡아달라고 한다. 화자는 거부한다. 늘 자정 무렵에 귀가하는 화자는 저 거미 가족도 꿈나라로 갈 시간인데 거미를 잡으면 저 집안은 어떻게 되겠느냐는 것. 만약 야밤에 일당이 나의 집을 이유없이 철거한다면? 잠자리에서 아내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과연 내 남편은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을까. <고형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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