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민자/「재산 재공개」싸고 줄다리기/「공직자윤리법」개정 계파간 혼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숨긴것 드러나면 또 파문” 민정·공화계/청와대의지 강력 “법대로” 민주계
최형우 전 사무총장이 아들의 경원전문대 부정입학 의혹을 받고 총장직에서 물러나던 지난 11일 민자당 고위당직자회의는 그날 분위기에 맞지않는 엉뚱한 것을 논의했고 이상한 결론을 내렸다.
『공직자윤리법 개정후 의원들의 재산 재공개가 있을 것이라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 단 개정된 법이 공개 재산범위 등을 달리 정하면 그 기준에 맞춰 몇몇 재산을 추가로 공개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발표가 그것이다. 이는 불과 이틀전에 재산 재공개 불가피성을 밝힌 김덕룡정무1장관의 말을 완전히 뒤집은 것이었다. 또 이같은 결론은 최 전 총장이 갑자기 돌출한 아들의 문제로 청와대에 다녀오는 사이에 내려졌다.
이날 회의에서 공직자윤리법 개정문제를 꺼낸 장본인은 김종필대표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재산 재공개 불필요성을 강조했으며 회의석상의 민정·공화계 고위당직자들도 화답했다. 그리고는 발표가 있었다. 김 대표는 최 전 총장과 김 장관이 없는 사이 한건 올린 셈이었다.
○총대 멘 김 대표
20일 청와대에 다녀온 황명수사무총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윤리법개정후 재산 재공개 여부에 대해 『다시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그가 대통령을 만나고 온 직후였으므로 이 말은 무게가 실린 것으로 해석됐다. 황 총장은 그러나 자신의 발언이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자 조금있다가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느냐』고 꼬리를 내렸다.
공직자윤리법 개정방향에 관한한 청와대의 의지가 상당히 강력하다는 것을 뒤늦게 눈치챘기 때문이다. 청와대의 한 고위관계자는 재산 재공개 문제에 대해 『윤리법 개정으로 재산을 새로 공개할 사람들이 많아질텐데 그중 일부가 재산을 이미 공개했다고 면해줄 수는 없다』고 확언했다. 그는 또 『게다가 개정될 윤리법에는 공개해야할 재산의 종류·평가기준 등이 명시될 것인바 일정 기준없이 재산을 공개한 의원 등이 새로운 규정에 맞춰 다시 공개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 문제에 관해 대통령이 황 총장에게 다른 이야기를 한 적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민자당과 청와대가 재산 재공개문제를 둘러싸고 이처럼 혼선을 보이는 이유는 왜일까. 혼선의 발단은 다름아닌 김종필대표다. 김 대표는 지난달 30일 재산공개 결과 물의를 빚은 소속의원들에 대한 징계조치를 발표하던 날 청와대로부터 공직자윤리법 개정시안을 받았다. 김 대표는 이날 시안내용중 일부인 5급이상 공무원의 재산등록 의무화 등을 발표했다.
○3역불러 한잔
김 대표는 그러나 시안에 명시된 재산 재공개 방침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후 최 전 총장이 물러나게 됐다. 그는 바로 그 순간의 힘의 공백을 틈타 재산 재공개 백지화 선언을 하도록 대변인에게 명했다.
황 총장이 20일 『재공개할 필요가 있느냐』고 한것도 사실 김 대표에게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있다. 김 대표는 윤리법 개정안을 만들고 있는 당정치관계법 심의특위가 청와대 지침대로 재산을 재공개하는 쪽으로 입장을 굳혔다는 보도가 있은 19일밤 당3역을 불러 술잔을 나눴다. 김 대표는 이 자리에서 지난 14일의 고위당직자회의 결과를 환기시켰다고 한다.
황 총장의 발언과 관련,민주계는 『윤리법 개정문제에 아직 확실한 개념정리가 안돼있는 총장이 JP페이스에 말려들었다』고 보고 있다.
재산 재공개문제는 지금 민정·공화계의 최대 관심사다. 이들은 당초 재산공개가 그렇게 모질고도 엄청난 파문을 몰고올 것으로 예상하지 못했다. 또 재산공개가 추진될때는 윤리법개정 여론이 심각하게 제기되지 않았다. 그래서 한순간만 넘기면 된다는 생각에서 재산은닉·누락·축소 등 불성실신고를 했다.
이런 마당에서 새 윤리법 규정에 맞춰 재산을 재공개하는 것은 이들에게는 매우 끔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재공개한다면 재산이 불과 몇달만에 확 불어난 것으로 나타날 의원들이 많을 것이다. 미술품 애호가인 김 대표도 수억원을 호가한다는 르누아르그림 등을 신고해야 할 판이다.
『그렇다면 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까. 설득력있는 설명·해명이 미처 준비되기도 전에 도덕적으로 지탄받지는 않을까. 또 일부 재산에 대해서는 그 형성과정이 의심받지 않을까. 재산을 계속 감춰두는 것은 어떨가. 그런데 만의 하나 탄로나면 어떻게 될까….』
이런 고민과 걱정이 재산이 비교적 많은 민정·공화계들에게 없을 수 없다.
김 대표는 이들의 고민을 잘 알고 있다. 곧 자신의 고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총대를 멘것 같다고 민주계측은 분석하고 있다. 민정·공화계는 자꾸만 재산공개 불필요 입장이 나오자 얼굴색이 한층 밝아졌다. 이들은 이제 『법개정안에 이미 재산을 공개한 고위공직자는 93년말까지 재산등록·공개를 유예토록 하는 경과규정을 두어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또 『국민감정이 아직도 격앙돼 있는만큼 윤리법 개정시기를 신중하게 택해야 한다』며 개정연기를 주장하기도 한다.
◎청와대 “못마땅”
그러나 이에 대해 청와대와 민주계는 못마땅한 표정들이다. 『최 전 총장이 불행을 당한 날에 재산 재공개 불가따위의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느냐』 『아직 업무파악도 제대로 못한 황 총장이라고 너무 만만하게 보는 것 아니냐』는 불평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재산 재공개로 인해 여권내에서 힘겨루기 양상이 한차례 나타났다고 보면된다. 이는 최 전 총장이 당을 장악했을때에는 보기 어려웠던 징후나 황 총장이 자리를 잡으면 곧 없어질 것으로 보는 관측이 지배적이다.<이상일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