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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연금의 경제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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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친친구여/ 돈, 돈 욕심을 버리시구려/ 아무리 많은 돈을 가졌다 해도/ 죽으면 가져 갈 수 없는 것/ 많은 돈 남겨 자식들 싸움하게 만들지 말고/ 살아 있는 동안 많이 뿌려서/ 산더미 같은 덕을 쌓으시구려.

 친구여/ 그렇지만 그것은 겉 이야기/ 정말로 돈은 놓치지 말고 죽을 때까지 꼭 잡아야 하오./ 옛 친구를 만나거든 술 한 잔 사 주고/ 불쌍한 사람 보면 베풀어 주고/ 손주 보면 용돈 한 푼 줄 돈 있어야/ 늘그막에 내 몸 돌봐주고 모두가 받들어 준다오/ 우리끼리 말이지만 이것은 사실이라오.(중략)

 / 멍청하면 안되오/ 아프면 안되오/ 그러면 괄시를 한다오/ 아무쪼록 오래 오래 살으시구려.

 법정 스님이 설한 것으로 소개되는 ‘중년(노년)의 삶’에 나오는 구절이다.

 12일 주택연금이 출시되었다. 주택연금은 고령자가 소유한 집을 담보로 맡기면 죽을 때까지 그 집에서 살면서 금융회사로부터 생활자금을 연금 방식으로 받는 상품이다. 말하자면 ‘돈=집’을 놓치지 않고 죽을 때까지 꼭 잡게 해 주는 제도다. 구체적으로는 부부가 모두 만 65세 이상인 고령자로 6억원 이하 주택을 가진 1가구 1주택자에 한해 가입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주택연금으로 충분한 노후생활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집 한 채만 갖고 있으면 친구한테 술 한잔 사고 손자한테 용돈 한 푼 줄 돈은 있는 노후생활이 가능해졌다.

 자녀가 없는 고령자는 부담 없이 주택연금제를 활용해 후생을 높일 수 있다.

 자녀가 있는 고령자는 문제가 좀 복잡해진다. 자녀한테 신세 지지 않고 좀 더 여유롭게 여생을 살게 해 준다는 점에서 주택연금이 매력적이다. 하지만 주택연금을 받으면 내 집 마련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시대에 빠듯하게 사는 자녀한테 물려줄 재산이 없어져 못할 짓인 것 같기도 하다. 도입 초기에 상담은 꽤 많았지만 주택연금 신청이 극히 저조한 이유다.

 우리나라의 50대 이상 부모들은 산업화 시대의 역군이자 극성스러운 자녀의 교육자다.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평생직장에서 떨려 나는 고통도 많은 사람이 겪었다. 그 후 남은 재산이라곤 집 한 채뿐인 노부모들이 그것마저 자녀한테 넘겨주고 괄시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제 “부모님, 사업자금이 필요하니 집을 어떻게 좀 해 주세요. 저희가 잘 모실게요” 식의 제의는 외면하고 주택연금에 드는 게 좋다. 화장실 갈 때와 올 때 맘 다른 것이 인지상정이다. 야박한 게 ‘멍청한’ 것보다 결국 모두에게 낫다.

 이런 경제적 합리성을 연장시켜 볼 때 현 주택연금에 문제점이 있다. 부모의 집만 포기하면 부모를 홀대해도 된다는 면죄부를 자녀에게 주는 측면이 있다는 점이다. 주택 가격의 일부만 주택연금으로 이용하고 나머지는 상속이 가능하게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 주택연금이 부모에게 주는 정서적 거부감과 자녀에게 미치는 부작용을 줄이고 주택연금제도를 조기에 정착시키는 방안이다.

 주택연금의 도입으로 집이 없는 저소득 고령자 계층은 상대적 박탈감과 자괴감이 커지기 쉽다. 이들 중 국가가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원해 주는 고령자는 전체의 8%대에 불과하다. 정부가 기초노령연금을 도입하고 차상위 빈곤층까지 지원한다지만 턱없이 모자란다.

 고가주택이나 2주택 이상을 포함해 많은 자산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주택연금이 있건 없건 상관없다. 이 ‘가진 자’가 못 가진 이웃을 배려해 나누는 정신을 가져야 한다. 우리나라가 세계 12대 경제강국이지만 가진 자의 기부문화는 후진국 수준이다. 자식들에게 변변한 집 한 채 물려줄 정도만 제쳐 두고 나머지 재산을 사회에 기부한다면 그게 바로 ‘산더미 같은 덕을 쌓는’ 일이다. 북한에서 태어났다면 많은 자산을 모으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다. 가진 자가 움켜쥔 손을 펼 때 우리 사회도 건강하고 따뜻한 선진사회로 올라설 것이다.

안국신 중앙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