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원-엔 시장을 육성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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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최근 원-엔 환율의 하락(절상)이 너무 가파르게 이루어지고 있어 많은 사람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원-엔 환율은 2005년과 2006년 각각 13.8%, 13.3% 하락했다. 이러한 하락 추세는 올해도 멈추지 않아 상반기에만 2.8% 하락했다. 이처럼 원-엔 환율이 하락하는 이유는 원-달러 환율과 엔-달러 환율의 움직임이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 확대에 따른 세계적인 미 달러화 약세로 인해 원-달러 환율은 크게 하락한 반면 엔-달러 환율은 미국의 묵인 아래 별로 움직이지 않아 원-엔 환율이 하락하게 된 것이다.

 일본은 우리나라에 제1 수입대상국이자 제3 수출대상국이다. 따라서 우리나라는 다른 국가들에 비해 더욱 크게 엔화의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원-엔 환율이 하락하면 환율의 전가효과로 일본 수출업자는 원화표시 수출가격을 내릴 수 있고 이로 인해 우리나라로의 수출을 증가시킨다. 반대로 우리나라 수출업자들은 일본으로 수출할 경우 엔화표시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어 대일본 수출량이 줄게 된다. 우리나라의 대일본 무역수지 적자는 2005년 240억 달러에서 2006년 254억 달러로 확대됐는데, 이 추세는 2007년에도 계속되고 있다. 또한 일본의 물가를 한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만들어 한국의 대일본 여행수지가 악화된다. 쇼핑을 위해 일본을 여행하는 사람들이 요즘 크게 는 데는 이러한 배경이 있다.

 원-엔 환율의 급격한 하락은 이론적으로 우리나라 경제에 큰 영향을 줌에도 불구하고 실물경제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이를 아직 크게 느끼지 못하는 듯하다. 우리나라의 무역상대국이 과거에 비해 다변화하면서 원-엔 환율의 영향이 상대적으로 감소했고, 중국 경제의 성장과 미국 및 유럽 경제의 회복세가 수출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한국의 무역수지는 2005년과 2006년에 각각 232억 달러와 161억 달러 흑자를 기록했고, 올 상반기에도 예상보다 순항하고 있다. 즉 대일 무역수지의 적자폭이 확대되고 제3 시장에서 일본과의 무역경쟁에서 다소 불리하더라도 주변 경제의 여건은 과거 어느 때에 비해서도 나쁘지 않은 상황이다. 따라서 현 상황에서는 원-엔 환율의 하락을 막기 위해 정부가 무리하게 외환시장에 개입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된다.

 만약 세계 경기의 호황이 멈춘 상태에서 원-엔 환율의 하락이 더욱 심해진다면 우리 부담감도 커진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에 대비한 준비가 필요하다. 가장 먼저 원-엔 시장의 육성을 꾀해야 한다. 원-엔 환율은 원-달러 환율과 엔-달러 환율이 정해지면 자동적으로 이에 연동해 결정되는 재정환율이다. 따라서 현재의 원-엔 환율은 한·일 양국 간 기초경제 여건을 완전히 반영한다고 볼 수 없어 국내 외환시장의 가격결정을 왜곡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올 4월 정부는 수요와 공급이 부족하다는 등의 이유로 원-엔 직거래시장 개설을 무산시켰다. 그러나 원-엔 시장의 발달은 원-엔 환율과 원-달러 환율의 상호 작용을 통해 환율의 고평가 정도를 완화시킬 가능성도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원-엔 시장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수출과 수입대금의 결제 시 엔화 결제의 비중을 높이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일본 정부는 1990년대 이후 국제금융시장에서 엔화의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 자국과의 무역에서 엔화 사용을 유도하고 있다.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엔화의 영향력 확대가 다소 부담스러운 면이 있으나 결제통화 중 달러의 비중이 90%를 넘을 정도로 편중돼 있으므로 이를 다소 조정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엔화 결제 비중을 확대하면 달러화 가치변화에 따른 충격을 완화할 수 있고, 원-엔 시장 활성화에도 도움이 된다.

강삼모 동국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