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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문제 해법찾기 고심하는 정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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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진상규명하자니 5,6공이 부담/명예회복·망월동 성역화엔 접근
김영삼정부출범후 첫 5월이 다가오면서 5·18 광주민주화운동문제가 새정부의 과제로 제기되고 있다.
해마다 이맘때면 제기되는 5·18이지만 올해의 의미는 다르다.
새정부가 맞이한 첫 5월이며,5·18의 당사자였던 정권의 손을 떠난 첫 5월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5·18은 여전히 민감한 상처로 살아 있기에 새정부도 부담스럽다. 부담을 느끼기는 광주의 5·18관련단체 지도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양쪽이 서로 상대방의 진지성을 인정하면서 문제해결에 적극 나서고 있다.
○현지 목소리 규합
청와대는 재야출신인 김정남교문수석과 80년 당시 광주시장이던 김양배행정수석을 중심으로 광주의 목소리를 들어왔다. 민자당은 또 민자당대로 문제해결을 위한 민의를 수렴해왔으며,16일에는 이환의광주시지부장으로부터 해결책에 대한 지역여론을 보고받았다.
한 관계자는 정부에서 마련중인 5·18해결대책에 대해 『지금까지의 국민들이 느꼈던 것과는 달리 국민들의 가슴에 「확」와 닿을수 있는 전향적인 입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정부의 기본입장을 『김영삼대통령도 5·18희생자와 같은 민주화의 희생자』라는 말로 대변한다.
그러나 지난 3월 대통령의 망월동참배가 무산된데서도 단적으로 드러나듯 새정부의 고민은 만만치않다. 당시 광주의 5·18관련단체는 각계대표 1백명이 밤을 새우는 대토론끝에 합의한 15개항의 단일해결안을 마련해둔 상태에서 대통령의 망월동참배에 찬성하고 참배후 이어질 면담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참배는 남총련소속 학생들의 점거시위로 무산됐으며,따라서 면담 역시 이루어지지 않았다. 당시 대부분의 5·18관련단체들은 『참배저지가 문제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않는다』며 참배를 저지하던 학생들을 설득하려 했으나 일부단체는 오히려 『구체적인 대안과 진상규명 없이는 안된다』며 학생들의 입장에 동조했다.
그러나 그후 광주문제의 해결에 진력해온 다수가 남총련을 설득한 결과 남총련이 이례적으로 김 대통령의 참배저지행위를 사과했다. 한걸음 나아가 강신석 5·18대책위원장 등은 16일 오후 5·18관련단체 회의를 갖고 조만간 김 대통령과의 면담을 공식요구키로 결정했다.
문제는 서로간에 이견이 잠복한 가운데 어느선의 해결책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며,그 해결책은 또 어느 정도로 광주의 한을 달래줄 수 있겠느냐는 점이다.
○“사과만으로 가능”
5·18관련단체가 마련한 단일해결안은 상당히 유연한 내용이어서 해결의 실마리는 충분히 보인다. 단일안은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제의 도입과 피해자들의 명예회복 등을 위한 특별법제정 등을 요구하면서도 가장 민감한 사안인 「책임자처벌」에 대해서만은 직접적인 요구를 피하고 있다. 이는 새정부에 대한 기대를 반영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일부에서는 책임자의 사과만으로 처벌을 대신할수 있다는 입장도 보이고 있다.
새정부가 이같은 광주의 기대에 얼마나 부응할수 있느냐는 것은 곧 정치권에 미칠 파문의 정도를 의미한다. 새정부의 전향적인 자세는 불가피하게 정치적 파문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5·18은 곧 5·6공정부의 도덕성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단일안에서 요구하는 특별검사제를 도입해 진상규명에 나선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다. 5공 인물에 대한 형사처벌은 아니라 하더라도 정치적 사형선고가 요구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재산공개파문이 채 가라앉지도 않은 정계에 또다른 회오리를 불러일으켜 갓 출범한 새정부에 적지않은 정치적 부담을 초래할 것이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해법은 직접적인 피해자를 내지않는 명예회복 조치일 것이다. 가장 실현가능한 명예회복방안은 특별법제정을 통한 피해자들의 명실상부한 명예회복이다. 88년 제정된 「광주보상법」에 의해 사망자나 행방불명자는 사후복권됐지만 아직까지 남아있는 당시 구속자 등에 대한 복권은 광주시민의 자존심이 걸린 중요한 문제다. 이밖에 망월동묘역의 성역화 및 확장,기념사업을 위한 단체설립,부상자영구치료 등의 조치는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6공에서 만들어진 「관련자보상에 관한 법」을 「배상법」으로 바꾸는 일도 적지않은 「명예회복」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광주의 명예회복은 한결같이 5·공에 대한 부정의 의미를 담고 있을수밖에 없다.
예컨대 보상법대신 배상법을 만든다는 것은 5·18에 대한 「동정적 보상」이 아니라 정당한 행위에 피해를 준 「정부의 잘못에 대한 배상」이란 의미다. 5·18에 대한 정부의 잘못을 인정한다는 것은 곧 5·18의 연장선상에 있는 5·6공 정부의 정당성을 부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어정쩡한 6공식 해결책으로는 광주의 한을 다시 한겹 더하는 역효과뿐일 것이다. 그렇지않아도 대선결과에 대한 지역적 실망감이 깔려있는 광주며 호남이다. 어정쩡한 해결책은 정치적으로 엄청난 부담만 안겨주게 된다. 한 관계자는 『뭔가 해보려는 의욕이 있는 대통령이다. 그래서 망월동을 찾은 것이 아닌가.
○타협의 정신 절실
그러나 일부에서는 민주화과정의 같은 희생자인 대통령의 의지를 5·6공의 인물과 같은 선상에서 보려는 성급하고 경직된 시각을 보여 안타깝다』고 말한다. 그의 말처럼 대통령은 「한번에 광주의 한을 풀어줄수 있는」 해결책을 찾고있는 듯하다. 성급하고 경직된 시각보다 개혁을 추진중인 새정부측과 5·18관련단체의 대표들이 서로 믿고 진지한 자세로 광주문제를 풀어가는 대화와 타협의 정신이 요구된다.<오병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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