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애나 편지 폭로로 다시 떠오른 음모론

중앙일보

입력

교통사고로 6년여전 숨진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폭로가 7일자 영국 언론의 머릿기사를 장식했다.사고 당하기 10개월전인 1996년 10월 썼던 편지의 한 구절이 언론에 공개됐기 때문이다.

"남편(찰스 왕세자)이 내 차의 브레이크를 고장내 나에게 중상을 입히려 한다.재혼의 길을 터기위해."

다이애나 사후 여러가지 음모론이 끊이지 않았었다.대표적인 예가 다이애나가 사고 당시 동행했던 이집트 출신 억만장자의 아들 도디 알 파예드의 아이를 가졌기 때문에 영국 왕실에서 '무슬림의 자식을 영국 왕세자비가 낳아서는 안된다'고 판단해 살해했다는 설(說)이다.사건 조사를 맡았던 프랑스 경찰 등이 여러차례 부인했고,최근엔 다이애나 부검에 참여했던 영국 의사가 "사실무근"이라고 밝혔지만 음모론자들의 루머는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있다.와중에 다이애나가 직접 남편을 지목했으니 음모론의 결정판이 아닐 수 없다.

찰스의 이름을 처음 공개한 언론은 영국의 대중지 데일리미러다.미러는 지난해 10월 다이애나의 집사였던 폴 버렐에게 수억원을 주고 다이애나 관련 회고록을 단독연재했었다.당시 찰스의 이름을 확인했던 미러가 6일 다이애나에 대한 검시용 청문회가 시작되는 날에 맞춰 폭로한 것이다.

영국은 자국민이 외국에서 사망한 경우 시신을 넘겨받아 사인을 밝히는 검시 절차를 의무화하고 있다.그러나 다이애나의 경우 프랑스 경찰에서 조사하는데 2년이 걸렸고,이후 프랑스 법원이 관련 재판을 수년에 걸쳐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검시가 이뤄지지 못했다.검시절차가 흐지부지돼온 자체를 '왕실의 음모'라는 루머가 나돌기도 했다.도디의 아버지인 모하메드 알 파예드의 검시 요구와 음모론,버렐의 다이애나 편지 공개(지난해 10월 데일리미러가 '찰스'이름만 빼고 공개) 등이 지속되자 6일 검시 청문회가 열리게 됐다.그런데 정작 검시담당 특별판사가 "자료 검토를 위해 청문회를 1년 이상 연기한다"며 "음모론을 차후 청문 대상으로 포함할 지 여부를 결정하기위해 런던 경찰에 루머 관련 조사를 요구했다"고 밝혔다.

정작 진상 파악을 위한 법적 절차는 1년 뒤로 넘어가고 '찰스가 다이애나를 죽이려 했다'는 음모론만 추가된 셈이다.편지를 썼던 무렵 다이애나는 폭식증(Bulimia.게걸스럽게 먹고 바로 토해버리는 일종의 정서불안증세)을 앓고 있었다.이혼 직후 정신적 고통에 따른 피해망상증도 엿보인다.찰스 이름을 폭로한 미러의 편집장도 "(다이애나의 주장은) 얼토당토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그래도 다이애나는 여전한 뉴스메이커다.영국인들의 왕실 들여다보기와 가십 즐기기는 음모론의 산실이다.

런던=오병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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