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용어 판치는 육상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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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역전경주·감찰·지휘·보도. 국내언론에서도 한자로는 좀처럼 표기하지 않는 일본식 육상용어다.
역전경주는 글자 그대로 일본에서 역과 역사이를 이어 달리는 중장거리경주다. 또 지휘니 감찰이니 하는 말들도 역전경주 참가선수들을 이끄는 사령탑에 일본에서 흔히 붙이는 이름들이다.
그보다 역전경주라는 말은 일본어발음인 「에키덴」으로 국제육상계에서 일반명사화한 용어다. 그만큼 역전경주대회는 일본에서 고안돼 전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육상의 주요종목중 하나로 자리잡고 있다.
원래 일본은 마라톤 후진국이었다. 그러나 일본육상연맹은 육상에서 국제 경쟁력이 있는 종목은 마라톤을 위시한 중장거리 뿐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는 주법, 훈련의 과학화, 지구력의 배양을 통해 서구인들과 겨뤄볼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 마라톤에서 선수를 길러내는 길은 긴 일본열도를 철길을 따라 분할해 이어 달리는 「에키덴」밖에 없다는 인식아래 40년대부터 언론사들을 중심으로 대회가 창설돼 지금은 전국적으로 1백여개를 넘고 있다.
모리시타·다니구치·이토·고다마등 세계마라톤을 주름잡았거나 이름을 날리고 있는 스타들이 「에키덴」에서 발굴, 조련되었다.
한국의 역전경주도 명칭들을 포함해 대회운영까지 일본 「에키덴」이 원형이 되고 있다.
그러나 명칭만은 우리 용어인 「이어달리기」나 「구간마라톤」등으로 바꿔 쓸 수 없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지난 11일 벌어진 서울국제여자역전경주대회는 팸플릿, 행사차량, 거리의 홍보 표지판, 각종 문서까지 일본식 약자등을 써가며 치러져 아쉬움을 남겼다.
현재 대한육상연맹 상층부는 회장단을 포함, 일본말을 유창하게 구사하는 지일파 일색이다. 그러나 일본에 대한 이해가 깊다고 해도 용어까지 일본에서 쓰는 말들을 그대로 들여다 쓰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이같은 경우는 일본이 종주국으로 자처하는 유도에서 심하고 심지어 야구등 일부 종목에서도 일본식 영어 또는 일본식 조어(조어)등이 사용되고 있어 이젠 한번 짚어볼 때가 된 것같다. <신동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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